[데스크시각-한장희] 소득주도 성장 가성비 따져보자 기사의 사진
편의점 주 고객이 20대라는 말을 처음엔 이해 못했다. “싼 마트를 놔두고 왜? 학자금 대출도 못 갚아 허덕인다면서.” 이런 반응에 후배는 “아재 다 됐다”며 나무랐다.

편의점이 20대의 주 소비처가 된 이유는 ‘혜자롭기’ 때문이란다. 혜자는 가격이 싸거나 내용물이 알차 이득이라는 뜻의 인터넷 용어다. 알아보니 ‘1+1’ 덤 행사에 통신사·멤버십 할인까지 받으면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제품이 꽤 됐다. 먹고 싶은 게 많지만 지갑은 얇고, 마트는 먼 상황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를 따지니 편의점이 답이었던 셈이다.

청년들이 가성비에 집착한다는 얘기는 사실인 듯싶다. 인형뽑기방 유행도 가성비 관점에서 봐야지만 해석이 가능하다. 원인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불안감을 꼽는다. 미래 소득에 대한 확신이 없어 비슷한 효용을 얻는 데 돈을 덜 썼다는 사실로 위안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청년들의 소비욕구가 약해졌다고 보긴 어렵다. 상당수는 소비활동이 왕성했던 부모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겉모습만으로도 ‘수저계급’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제품 정보도 꿰뚫고 있다. 강한 소비욕구를 누르고 효율 극대화에 매달리는 게 생존본능이 작동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기성세대보다 값싸게 노동을 제공해야 하고, 늘어가는 노인 부양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그들을 가성비 민감세대로 만들었다는 추론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이르면 10년 안에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한국은행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초저성장 사회 진입을 앞두고 본능적으로 생활습관을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정부가 확정·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근간으로 한다. ‘근로자 소득증가→소비증가→투자증가→경제성장률 증가’라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낙수 효과를 전제로 한 경제성장 전략이 거꾸로 소득양극화와 중산층 붕괴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액션플랜은 이미 가동됐다. 공무원을 더 뽑기로 했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도 사실상 주도했다. 편의점주 등 영세상공인이 겪는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직원 임금 인상분도 직접 지원키로 했고, 이를 위한 부자증세안도 내놓았다.

성패는 선순환 구조의 첫 고리, 즉 인위적인 임금 상승이 소비 증가로 이어질지에 달려 있다. 물론 소비가 증가해도 성장률을 단번에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잠재성장률을 1% 포인트 상승시키려면 소비증가율이 지속적으로 2% 포인트 상승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 평균 명목임금소득이 무려 연 9.3%나 올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저성장 시대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임금 인상에 동참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이 어려운 상황이다.

참여정부 시절 ‘비전2030’ 수립을 주도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최근 펴낸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비용 사회로의 구조개혁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기업을 옥죄어 명목소득을 올리는 것보다 살림살이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근로자의 실질소득을 올리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논리다. 가성비 높은 사회로 구조를 개혁하자는 주장으로, 우선 주거비와 사교육비를 손대야 한다고 했다. 기업 경영권에 속하는 임금보다 주택, 교육 정책을 통해 생활비용을 줄이는 게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다 현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소득주도 성장론도 변 전 실장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정책방향에서 드러난 주거비 경감 대책은 신선함과 기대감을 안겨주진 못했다.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청년들이 60년 만의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들려준 얘기는 곱씹어 볼 만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지만 최근 20∼30대 응답률은 취임 초반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 평가를 유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