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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김혜림] 면세점, 황금알 낳으려면

[내일을 열며-김혜림] 면세점, 황금알 낳으려면 기사의 사진
‘황금알’을 낳는다고 해서 어렵사리 잡아들인 거위. 황금알은 구경도 못한 채 먹이를 대느라 허덕거리게 된 주인들은 안절부절못한다. 애써 분양받은 거위를 “나중에 데려오겠다”고 버티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서울 시내면세점 이야기다.

지난해 특허권을 거머쥔 현대백화점과 신세계DF는 올해 말 오픈 예정이었던 현대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강남점 개장을 연기해 달라고 관세청에 요청했다. 2015년 현대산업개발과 손잡는 깜짝 이벤트로 특허권을 따냈던 호텔신라는 면세점 매출 하락으로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7.9% 감소했고 회사채 등급도 ‘부정적’(한국신용평가)으로 떨어졌다.

면세점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 성장세가 꺾인 유통시장에서 나홀로 성장해 왔다.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02년 1조8205억원에서 2008년 3조1024억원, 2012년 6조3292억원으로 매출이 뛰었다. 지난해에는 12조2757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7월에는 수익률이 높아 ‘황금알 낳는 거위’ 대접을 받는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 3장이 새로 나왔다. 유통 대기업들은 거위 사냥에 나섰다. 얼마나 치열했으면 ‘면세점 대전’으로 불렸을까. 그해 11월 특허가 만료되는 3장, 지난해 12월 새로 추가된 4장을 낚아채기 위한 2, 3차 대전이 이어졌다. 성급한 이들은 올해 만료되는 1장의 특허권을 놓고 4차 대전을 예상했지만 그럴 일은 없어졌다.

황금알을 낳기는커녕 사료만 축내는 거위가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2015년 말에 비해 거의 배로 늘어나 공급과잉 상태인 면세점은 요즘 중국관광객(유커)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울상이다.

오는 유커들만 믿고 시장 다변화 시도를 외면해 온 면세업자들의 안이함은 거위의 체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거위의 목을 아예 비틀어버린 것은 정권의 갑질이다. 박근혜 정권은 면세점 특허권을 재벌 길들이기 수단으로 썼다.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시장 질서를 흩트렸고 채찍과 당근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허권을 남발했다. 3회의 면세점 대전에서 주무부처인 관세청은 꼭두각시 노릇을 제대로 했다. 특정 업체를 떨어뜨리기 위해 평가 점수를 조작했고 특허권 수를 늘리기 위해 기초 통계조차 왜곡했다. 그렇게 해서 서울 시내면세점 수를 잔뜩 늘려놓은 박 정권은 아무 대책 없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중요 고객을 내쫓았다.

세계 1위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면세 시장은 자유시장 원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휘둘려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굴뚝 없는 황금산업인 관광업을 떠받치는 면세사업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시내면세점은 1978년 허가제로 시작됐으나 올림픽을 앞두고 1984년 일시적으로 등록제가 실시됐다. 2008년 신규 특허 요건이 강화됐고, 2012년 대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면서 일명 ‘홍종학법’(홍종학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 대표 발의)이 등장했다. 특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특허 갱신 조항을 삭제했다. 중소기업 몫도 할당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면세 시장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신고제로 전환할 경우 대기업 독식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염려가 크다. 그렇다면 면세점 규모를 기준으로 이원화된 제도를 도입해보자. 대형 면세점은 특허제를 유지하되 특허 갱신 승인제도를 부활시켜 안정적인 투자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자. 다만 특허 갱신 심사 때 중소기업 제품의 판매실적, 관광인프라 구축,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 정도를 엄격하게 심사해 독식을 견제하자. 소형 면세점은 신고제로 전환해 다양한 미니 면세점을 육성하자. 그렇게 해서 유명 고가 브랜드를 갖춘 대형 면세점과 개성 있는 작은 면세점을 둘러보는 ‘면세점 투어’를 관광상품으로 내놓자.

제도 개선에 앞서 면세사업에 대한 중장기 비전과 전문지식을 갖춘 주무부처가 생겨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김혜림 논설위원 겸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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