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전문가들의 죽음 기사의 사진
톨스토이는 회심 후 쓴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에 대해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죽음에 대한 묘사, 묘사로부터의 묘사’라고 썼다. 여기서 ‘평범한 사람’이 단순치 않다. 이게 밝혀져야 두 번째 ‘묘사’가 환기시키려는 작가의 열심이 제대로 드러난다.

주인공의 모델은 생리학자로 유명한 일리야 메치니코프의 형제로 작가가 교류했던 이반 일리치 메치니코프였다. 그는 툴라지방법원의 판사로 이른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일리야는 소설이 자기 형제의 풍부한 인간성을 추상화된 형태로 단순화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이 추상화와 단순화가 톨스토이가 기획한 ‘묘사로부터의 묘사’의 의도였다. 등장인물 전체가 단순화되고 추상화된 형태인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란 그들이 속한 법원조직과 같은 개개의 범주에 속한 전부를 말한다. 평범하지만 법조인, 정치인, 학자, 군인, 관료, 경찰, 교육자, 언론인, 기업인, 종교인 등 전문가들인 것이다. 작가는 그들 각계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인간들이 아님을 폭로한다. 전체로서 어떤 비인격적인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추상적이고 단순화된 존재들. ‘단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위로 올라가 마침내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 출세라고 작가는 쓴다.

전문가란 자신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올바르고 진실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타인들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을 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육, 취직, 결혼, 성공과 출세를 위한 최선의 최선을 다한 줄서기. 영원히 변치 않도록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세상의 프로토타입이 아닌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다. 뭘 좀 안다는 고정관념이 어려서부터 몸에 뱄으나 실제론 아는 게 없는, 그 불쾌하고 끔찍한 의심과 두려움을 미뤄두고 있을 뿐인 게 전문가들의 평범함의 실체다. 군더더기를 빼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헛 살아온 것인가.” 이반 일리치는 진정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자신을 추동해온 야망과 노력과 보상들은 짜맞춰진 연극이었다. 판사의 고상한 업무로부터 가정생활과 심심풀이 카드도박까지, 사회적 삶들은 연습된 동작에 불과했다. 죽음에 직면해서야 그들 가운데 홀로 이반 일리치는 죽음과 맞서게 된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제외한 동료들이 여전히 죽음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세밀히 보여준다. 누가 치안판사직을 승계할 것인가, 그것만이 그들의 관심사다. 아내와 딸조차 유산이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해서만 근심어린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자기 옆에 살아있는 사람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가 이미 죽었으므로) 타인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슬프지도 않다. 슬퍼해야 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무관심과 거짓과 위선의 삼위일체. 이것이 이반 일리치가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음과 마주해 깨닫게 된 세계의 잔인함이었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한 평범한 전문가들의 비인격적 냉혹함이었다. 거기서 깨닫는다. 이런 쓸모없는 직업과 명성과 재물에 집착하며 뭔가를 아는 체하는 전문가로 나 역시 살아왔다. 세월호처럼 비정하고 잔인하게.

이 소설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특히 지식인 전문가 집단의 무신론적 견해를 가리킨다. 이반 일리치는 하인 게라심과 아들의 사랑을 통해 구원 받는다. 소설은 판사 이반 일리치의 갱생으로 끝나지만, 현실의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여전히 세상을 농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극찬하는 전문가(!) 중에 그 점을 밝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적폐청산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발이 거세다. 과거엔 반정부 종북으로 몰더니 이제는 친정부 비전문가들의 음모(陰謀)론을 편다. 현실이 음모에 불과했다니 현실인 게 더 중대한 음모 아닌가. 전문적 견해에 대한 근본적 의심과 불신의 출처는 외면한 채 정치적 괴물이나 사회적 좀비로 커밍아웃하는 전문가들의 끝판을 본다. 중뿔난 교만과 악은 보편적 사랑에 반하는 사단의 두 가지 특성이다.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들이었던가. ‘웬일이냐, 너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사 14:12) 교회 전문가들의 평범성부터 깨뜨릴 일이다.

천정근 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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