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9> “요동치 않겠습니다” 기도로 불안 이겨내

낮엔 검사 만나고 오후엔 TV로 사상교육… 北, 위성 발사 계기로 美와 협상 나선 듯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9> “요동치 않겠습니다” 기도로 불안 이겨내 기사의 사진
지난 5월 북한선교를 위한 ‘느헤미야 기도회’에서 케네스 배 선교사가 기도하고 있다. 서빙라이프 제공
2012년 12월 중순부터 2013년 4월말까지 4개월 반 동안의 예심은 북한 검찰의 사전심의 절차를 밟는 기간이었다. 검사 질문에 답변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후 5시부터 밤 10시30분 방송이 끝날 때까지 TV 시청을 해야 했다. 그것 자체가 사상교육이었다.

2012년 12월 12일. 어느 때보다 방송이 일찍 시작됐다. 분홍색 전통 한복을 입은 한 여자 아나운서가 극도로 흥분한 듯 몸을 흔들면서 보도를 시작했다. “은하 3호 로켓으로 광명성 3호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북한 방송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만약 북한이 위성을 궤도에 올렸다면 이제 미국 서해안에 핵폭탄을 투하할 능력을 갖춘 셈이다. 평양은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미국을 미워하고 자신들의 고통이 미국 탓이라고 하는 나라에 홀로 억류돼 이런 소식을 들으니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때까지 가족에게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고, 미국 정부가 나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한없이 맥이 빠졌다. 시편 91편 14∼15절 말씀을 묵상했다. “케네스야 내가 너를 건지리라. 내가 너를 높이리라.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 환난 당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우울함이 멀리 사라지고 기쁨이 나를 온통 감쌌다.

문득 내 죄목을 생각했다. 북한 정부가 내게 붙인 죄목 중 하나는 내가 평양에 ‘기도의 집’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런 고소를 당했으니 정말로 기도의 집을 세워보자. 하나님 이곳은 바로 당신의 집입니다. 이 거룩한 땅 위에 제가 서 있습니다. 요동치 않겠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당신과 함께 서겠습니다.’ 방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기도했다. 보초는 힐긋 보고 내가 미친 게 분명하다는 표정이었다.

리철 검사가 내 사건의 주된 예심원 검사였다. 내가 쓴 300페이지 진술서를 매일 읽으며 확인하는 일이 반복됐다.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리철 검사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면 전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 정부에 석방을 위해 호소해 달라고 적어”라고 했다.

12월 21일 리철 검사가 나를 양각도 호텔로 데리고 갔다. 호텔방에 서양인 두 명이 들어왔다. “저는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인 칼 울라프 안더손입니다. 여기는 부대사 욘 스벤손입니다. 저희는 미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선생님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족들의 편지를 전해줬다. 아내의 편지를 읽는 동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보내준 편지도 눈물 속에서 읽었다.

리철 검사는 자신들이 범죄자를 얼마나 인도주의적으로 대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가족들과 통화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단 내가 헌법 60조를 어겨 법정 최고형을 받게 생겼다고 말해야 하며 써 놓은 원고대로 말하라고 했다. 아내와 통화하는데 와락 눈물이 쏟아져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는 흐느꼈다.

“걱정마 다 잘될거야. 내가 아무 해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어.”

워싱턴에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과도 통화하고 다시 억류시설로 돌아왔다.

나중에 나는 12월 11일 미국 국무부가 나의 억류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성 발사와 날짜가 겹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시 북한의 정치 전략의 일부였을 것이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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