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거울을 깨면 나를 감출 수 있는가

마가복음 8장 22∼26절

[오늘의 설교] 거울을 깨면 나를 감출 수 있는가 기사의 사진
나르시시즘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됐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정신 분열의 한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점을 타인에게 어떻게 해서든 숨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악과를 먹고 죄를 범한 인간의 죄성(罪性)이기도 합니다. 아담은 죄를 지은 뒤 부끄러움을 느껴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법은 그 법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선하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그 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통해 비쳐진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거짓된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비쳐진 인간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의 외형만이 아니라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죄악 본성까지도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 앞에 서기를 싫어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은 사람들에 의해 끌려오다시피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자신의 눈이 떠지고 싶다면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달려 나와야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곧바로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입니다. 문제는 해결 받고 싶은데 창피 당하기는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불꽃처럼 꿰뚫어보시고 그의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안수하십니다. 두 번 안수하신 예수님은 맹인이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도록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마을로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그가 치유된 자체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한 줄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아무리 말해줘도 모릅니다.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놀라운 기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연못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려는 이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호숫가에 돌을 던집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비춘 거울의 모습을 부정하며 거울을 깨버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거울을 깬다고 더러운 죄가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연못에 비쳐진 자신의 더러움을 인정하며 주 앞에 엎드린 자들만이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 앞에 더러운 죄악들을 폭로시킬 때입니다. 그리고 겸허히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이럴 때에 주님께서는 두 팔 벌려 탕자를 끌어안듯 우리의 악함과 연약함을 안아 주실 것입니다.

배철 목사(부천 길과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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