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느린 쓰나미’… 항생제 내성균의 역습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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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움직이는 쓰나미.’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균을 이렇게 규정했다. 지금 당장은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보다 낮은 소수의 일이지만, 방치할 경우 엄청난 재앙이 인류사회에 닥칠 것이라는 경고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새로운 내성균, 이른바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은 사망률 증가와 치료기간 연장, 의료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신종 감염병 이상의 파급력을 갖는다.

영국 정부는 세계적으로 매년 70만명이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으며 2050년에는 서울 인구와 맞먹는 10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머지않아 항생제 내성이 암보다 더 치명적 사망 요인이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WHO 등 국제사회는 2015년 국경을 초월하는 내성균의 발생과 확산을 막기 위한 ‘글로벌 행동 계획(Action Plan)’을 제시하고 국가별 대책 마련과 국제 공조를 촉구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8월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2016∼2020년)을 발표하며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내성균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본격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의료기관에서 항생제 오남용 줄이기와 적정 사용, 수술 후 감염 관리 및 예방, 항생제 사용 국민 인식 개선 등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 병원 간 환자 이동에 따른 내성균 확산 방지, 새로운 항생제 개발과 신속한 환자 접근성을 위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요양병원→큰 병원 내성균 확산

최근 중소병원, 특히 요양병원에서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오갈 때 항생제 내성균의 대규모 확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병원 간 환자 전원(轉院) 시 내성균 진료 정보 공유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기관들이 어떤 치명적 내성균을 갖고 있는지 까맣게 모른 채 환자를 서로 주고받는다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31일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주로 급성기 질환 치료 병원에서의 감염 관리 대책 마련에 중점을 둬 왔다”며 “요양병원의 경우 환자들의 장기 입원으로 내성균 전파 위험이 큰 데다 급성기 병원에 비해 감염관리 인프라는 취약해 항생제 내성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2015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A씨(79·여)는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수술받은 뒤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와상(臥床) 상태로 지내왔다. 그러다 지난해 6월 갑작스럽게 고열이 나고 폐렴 설사 증상을 보여 응급실로 다시 실려왔다. A씨의 객담(가래) 검사에서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MRAB)’이 나왔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은 인공호흡기를 낀 중환자들에게 감염을 잘 일으키는 세균이다. 카바페넴은 광범위한 병원균에 잘 듣는다 하여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항생제다.

고려대 안암병원 감염내과 윤영경 교수는 “A씨는 요양병원에서 반복되는 폐렴으로 강력한 효과를 내는 카바페넴과 반코마이신을 여러 차례 투여했지만 발열 증상이 계속되고 설사가 악화되는 등 현존 최고의 항생제마저 듣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2∼3개 항생제 병합 치료로 급성기 증상이 나아져 또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겨갔던 A씨는 올해 1월 패혈증 쇼크가 와 두 번째 응급실로 실려왔다. 이번엔 혈액검사에서 ‘카바페넴 내성 폐렴 막대균’과 ‘카바페넴 분해효소 생성 장내세균(CPE)’이 동시에 검출됐다. 노인에게 급성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 막대균은 최근 내성률이 높아지고 있다.

CPE는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알균(VRSA)과 함께 최근 3군법정 감염병으로 지정돼 전수감시(모든 의료기관 의무 신고) 대상이 된 다제내성균(3가지 이상 항생제에 듣지 않는 균)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의 한 종류다. CRE는 전수 감시 대상이 된 지 두 달도 채 안돼 1400여건이 발생 신고되는 등 급증 추세다.

VRSA는 아직 국내 발생 신고가 없지만 내성균이 나타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이런 슈퍼박테리아들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효과적 치료제가 없고 확립된 치료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윤 교수는 “A씨에게 어쩔 수 없이 3개의 항생제를 병합 투여했지만 결국 닷새 만에 숨졌다”고 했다. CRE로 인한 사망률은 50%에 가깝다.

고려대병원 측은 A씨가 응급실에 실려 올 때 요양병원으로부터 내성균에 대한 어떠한 진료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윤 교수는 “입원해 내성균 분리까지 사흘이 지난 뒤에야 환자 1인실 격리, 주변 환자 균배양 검사 등 병원 내 전파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털어놨다.

요양병원은 암 수술 환자나 뇌졸중 당뇨병 등 만성 질환자들이 장기간 입원(평균 20일 이상)하기 때문에 항생제 처방이 많이 이뤄지고 그에 따른 내성균 발생과 전파도 쉽다. 반면 감염내과 의사나 감염관리실이 부재하는 등 대다수의 감염 예방 인프라는 취약하다. 특히 도뇨관(소변줄)이나 카테터(투약관) 인공호흡기 등을 낀 상태라면 내성균이 더 많이 발생한다. 윤 교수는 “항생제는 균 배양검사를 통해 적합한 것을 써야 하는데, 많은 요양병원들이 검사도 않고 항생제를 마구 쓴다. 먼저 사용하고 보자는 식”이라고 했다. 특히 쓰는데 아주 신중해야 할 ‘마지막 보루’ 항생제 카바페넴의 오남용이 많다.

병원 옮긴 환자 절반, 다제내성균 보유

2015년 국가 항생제 내성정보 연보(KARMS)에 따르면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VRE) 비율은 요양병원이 58.6%로 가장 높았고 병원(12%) 의원(10.6%) 순이었다. 또 요양병원에서의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에 대한 카바페넴 계열 항생제 이미페넴과 메로페넴 내성률은 각각 82.4%, 81.5%에 달했다. 피부감염과 욕창 요로감염 폐렴 등을 일으키는 녹농균 내성률은 이미페넴 43.2%, 메로페넴 36.3%로 종합병원(이미페넴 33.3%, 메로페넴 27.9%)보다 약 1.2∼1.3배 높았다.

정부는 올 4월부터 중환자실이 있는 200병상 이상 병원, 내년 10월부터는 중환자실 여부와 무관하게 150병상 이상 병원은 모두 감염관리실을 의무 설치토록 법을 바꿨다. 하지만 급성기 병원에만 해당되고 요양병원은 대상에서 빠졌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요양병원 평가 인증에 감염관리 항목이 있긴 하지만 급성기 병원에 비하면 기준이 느슨한 편이다.

요양병원을 비롯한 병원 간 이동 환자의 내성균 보유 실태도 심각하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박치민 교수팀이 2012년 1월부터 3년간 다른 병원에서 옮겨온 중환자 321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47%(151명)가 다제내성균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은 27.1%,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MRSA) 21.5%, 카바페넴 내성 그람음성막대균(CRGNB) 15.6%, 광범위 베타-락탐계 항생제 분해효소 생성장내세균(ESBL) 3.7%의 내성률을 보였다.

의료진은 “전원 환자의 경우 다제내성균 보유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뒤늦은 격리에 따른 내성균 확산 위험이 증가하고 적절한 항생제의 선택 또한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또 “병원 간 전원되는 중환자 수가 증가할수록 동반되는 다제내성균 확산 가능성도 커진다”고 덧붙였다.

보건 당국도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이르면 올해 안에 의료기관 간 내성균 보유 정보를 공유하는 전산 시스템과 대형병원-중소병원 진료 의뢰·회송 네트워크를 구축키로 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로 도입된 스마트검역 시스템처럼 각 병원의 의약품처방조제지원(DUR) 시스템에서 클릭하면 환자 방문 시 내성균 보유 여부와 거쳐 온 병원 등 관련 정보를 팝업 혹은 알람 형태로 알려주는 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라며 “전수감시 대상인 CRE와 VRSA에 우선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새 항생제 신속 접근 지원 필요

내성균에 효과적인 새 항생제 개발과 치료 현장의 신속한 도입에도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 항생제 내성의 출현을 피할 수 있는 신항생제 개발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10년 정도 기간과 800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국내외 제약사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2010년까지 지난 30년간 전 세계에서 개발된 새로운 계열의 항생제는 3종뿐이다. 2007년 이후 10년간 국내 허가된 항생제 신약은 6품목이다. 이 중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그람음성균(다제내성균의 일종)’에 치료 효과가 입증된 신약은 3품목에 불과하다.

카바페넴 내성균에 사용 가능한 다국적 제약사의 일부 신항생제는 국내에서 적정한 급여(보험 약가)를 받지 못해 의료 현장에서 신속히 쓰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윤 교수는 “중환자에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가 부족해 ‘마지막 보루’인 카바페넴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내성 발생이 증가하는 양상”이라며 “최후의 항생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카바페넴 대신 사용 가능한 새 항생제 개발과 빠른 도입을 위한 지원, 약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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