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2> “아들아, 주가 너를 구하지 아니할지라도 감사하자”

어머니 편지에 ‘귀국 꿈 내려놓겠다’ 기도… 열흘 뒤 어머니 방북… 이틀간 네시간 면회

[역경의 열매] 케네스 배 <12> “아들아, 주가 너를 구하지 아니할지라도 감사하자” 기사의 사진
케네스 배 선교사의 어머니 손명희씨가 2013년 10월 북한 평양을 찾아 그를 면회하고 돌아온 뒤 CNN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CNN 화면 캡처
병원에 온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리철 검사가 찾아왔다. 그는 북한에 억류돼 있는 동안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준 유일한 북한 관리였다. “준비해. 당신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어.” 훤칠하게 생긴 미국인 두 명이 들어왔다. “백악관에서 왔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선생님이 잘 있는지 확인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들이 너무 반가워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나를 집에 데리고 가려고 왔구나.’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선생님의 석방이 우리 정부의 최우선 사항이란 사실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지금 상황이 매우 복잡합니다.” 한숨이 나왔다. 백악관 관리가 겨우 5분간 비밀리에 나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나의 석방이 미국 정부에 중요하다는 뜻이었지만, 곧 풀려나리란 희망은 산산이 깨졌다.

미국 관리들이 돌아간 후 어머니의 편지와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두 가지 문서가 내게 전달됐다. 문서 중 하나는 북한이 내 석방을 협상하기 위해 로버트 킹 미국 인권담당 특사의 방북을 허락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서대로라면 특사는 2013년 8월30일 평양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9월 중순에 이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직 특사를 보지도 그에 관한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두 번째 문서에 그 이유가 설명돼 있었다. 특사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가기 전 날 북한 정부가 돌연 그의 방북을 거절했다. 특사가 군용기를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이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했다. 게다가 8월28일 미군이 남한과 합동군사훈련 일환으로 괌에 배치된 B-52 폭격기를 남한으로 보냈다. 북한은 이 일을 큰 위협으로 여겼다.

국무부 문서를 읽고 어머니의 편지를 읽었다. “아들아 너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 불 앞에서 품었던 믿음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구원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감사하자.”

문득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은 심한 낙심과 약한 낙심 사이를 널뛰기했다. 2013년 9월24일 마침내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주님 제 마음 아시지요. 하지만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저는 집에 가고 싶지만 당신이 머물라 하면 머물겠습니다. 집에 갈 권리를 포기하겠습니다. 제 모든 뜻을 당신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 순간 내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떨어져 가는 듯 평안이 찾아왔다. 마음이 편해진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 리철 검사가 찾아왔다.

“우리 정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당신 어머니의 방문을 허락했어. 지금 당신 어머니가 평양에 와 있어. 우리는 서구 언론이 매도하는 것처럼 지독한 사람들이 아니다.”

리철 검사가 나간 지 40분가량이 지난 후 문밖에서 간수가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넣어 돌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내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가 나타났다. 벌떡 일어나 달려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방엔 촬영팀과 몇몇 북한관리가 함께 들어왔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몸은 괜찮냐”며 쉴 새 없이 물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마카다미아를 넣은 하와이언 초콜릿, 육포, 견과류, 프로틴 바, 비타민 등을 한 아름 꺼냈다. 어머니와 하루 두 시간씩 이틀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정리=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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