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재중] 같은 장소, 다른 풍경 기사의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지난달 27∼28일 청와대에서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방랑식객의 자연 음식과 중소기업이 만든 수제 맥주 등 소박한 차림도 눈에 띄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이 맥주를 따르고 금융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를 총수들에게 배달하는 모습은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사전 각본이나 주제, 대통령 말씀 자료도 없었다. 4년 전 같은 장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회동했을 때 재계 총수들은 표정이 굳어 있었고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기에 바빴다. 과거에는 총수들이 한꺼번에 초대돼 대통령 말을 주로 듣는 형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두 번으로 나눠서 경제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 대통령은 현대자동차가 사드 문제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을 걱정하고, 주력 산업인 조선업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뼈 있는’ 제안도 있었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서비스 산업과 유통분야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제조업보다 월등하다며 서비스 산업 육성대책을 건의했고, 금춘수 한화 부회장은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입지 조건 완화를 요청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황창규 KT 회장은 반도체와 4차 산업혁명에서 필요한 인력 양성에 대한 정부 관심을 촉구했다.

일단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만나 소통하려는 자세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만남 그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제를 적극 풀어내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신세계, 롯데 등 유통기업들은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큰 데도 복합쇼핑몰 등을 개설하는 데 규제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복합쇼핑몰 하나 세우면 5000명의 일자리가 생기는 데 사소한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면서 상생을 명분으로 복합쇼핑몰 출점을 규제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처럼 일자리 확대와 규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대·중소기업 상생 등 양립하기 힘든 과제들이 쏟아지면서 ‘정책 상충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통신비 절감도 좋지만 이동통신사들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5G에 투자할 수 있는 기반까지 흔들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에 설치된 일자리상황판도 너무 숫자에 집착하는 전시 행정이라는 느낌이 든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일감이 줄어 일부 조선소의 가동이 중단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사드문제로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구본준 LG부회장은 “중국이 중국산 배터리를 키우려고 한국 업체는 못 들어 오게 명문화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미국의 통상압박 조치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도 필요하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당분간 미국에 (철강)보내는 거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은 경제살리기를 위한 동반자 관계다. 정부는 과거 경제개발시대처럼 산업을 주도하려 하기보다 공공 인프라를 확충하고, 기업들이 창의적으로 투자하며 고부가가치 사업을 창출하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재계 숙원인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에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

지혜로운 임금이었던 솔로몬은 한밤중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열왕기상 3:9)라고 청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인들과의 회동에서 많이 듣겠다고 했다. 이번 청와대 간담회는 시작일 뿐이다. 기업인들은 아직도 할 말이 많다.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기업인들과 자주 만나서 신뢰를 쌓고, 그들의 고충과 건의를 경청하면서 경제정책의 밑거름으로 삼아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운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김재중 산업부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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