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명희] 착한 성장과 나쁜 세금 기사의 사진
빌 클린턴 미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고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는 1970년대는 성장이 최고의 분배정책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성장이 일자리 창출을 통해 분배도 해결한다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상위 10%, 그것도 상위 1%나 0.1%에 집중되고 중산층 소득은 경제성장의 반도 안 되는 증가율을 보이고, 저소득층은 성장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분배 위주의 정책이 100% 대안이 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성장 위주도, 분배 위주도 아닌 그 사회 환경에 적합한 조화로운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과거 9년의 보수정권이 성장 지상주의를 추구했다면 문재인정부는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아동수당·청년구직수당 신설, 노인 기초연금 인상, 취약계층 부채 탕감 등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고 호주머니를 채워줄 ‘착한 정책’들이 쏟아진다.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시키고, 내수가 진작되면 투자가 일어나는 착한 성장을 하겠다는 게 현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이다. 너무 속도를 내는 게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나라의 공공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21%)의 절반밖에 안 된다. 멕시코를 제외하면 꼴찌 수준이다. 소득 불평등은 4위다. 복지 지출을 늘리자는 데는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적다고 무턱대고 빚을 늘릴 수는 없다. 방법은 씀씀이를 줄이거나 국민들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 공정 사회에 방점을 둔 정부가 지출을 줄이긴 쉽지 않아 보인다. 5년간 벌어들이는 것(경상성장률)보다 더 많이 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증세다. 선거에서 증세는 독배(毒杯)로 비유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을 올렸다가 민심을 잃어 정권을 내준 사례가 부지기수다.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는 연방부가세를 도입했다가 1993년 총선에서 보수당 의석이 169석에서 2석으로 줄어드는 참패를 겪었다. 그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를 운영하겠다면 이 정도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자주 인용했다.

정부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겨냥한 ‘부자증세’만 하겠다고 한다. 이들에게 더 걷는 세금은 연간 6조2700억원, 5년간 31조원이다. 새 발의 피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었지만 135조원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담뱃세를 올리고 연말정산 공제 제도를 바꿔 우회 증세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를 다 하려면 178조원이 드는데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들에는 증세를 안 하겠다고 못박았다. 근로소득자의 절반가량(46.5%)이 세금을 안 내는 기형적인 소득세 면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세제개편안에서 뺐다. 미세먼지 절감을 위해 추진한 경유세 인상도 마찬가지다. 국가 지도자라면 나라를 위해 인기 없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산타클로스처럼 다 퍼준다고 하면서 부자들에게만 ‘핀셋과세’니 ‘명예과세’니 하며 세금 더 내라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중부담 중복지’ 국가로 가기 위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19.4%로 OECD 평균(25%)보다 낮다.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원한다면 모든 국민이 십시일반 부담도 나눠 져야 한다. 자기들이 올려놓은 담뱃세를 정권 바뀌니 내리자고 코미디하는 자유한국당은 제쳐놓고 야당도 증세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중부담 중복지’를 주창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증세 필요성에 동의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복지에만 쓰는 ‘사회복지세’까지 만들자고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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