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변양균 노선과 홍장표 노선 기사의 사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경제 교사가 둘 있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과 홍장표 경제수석이다. 변양균은 슘페터주의자다. 그는 이 시대에 창조적 파괴라는 슘페터식 혁신이 유효 수요 확대라는 케인스식 대안보다 유효함을 강조한다. 그는 혁신의 파동을 만드는 것이 도약의 관건이라고 본다. 반면에 홍장표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문재인 캠프에 주입한 학자다. 세계노동기구에서 주창된 ‘임금 주도 성장론’의 한국판인 ‘소득 주도 성장론’은 명백히 케인스주의 처방이다. 재벌 위주 경제의 낙수효과 한계가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대신 분수효과가 제시된다. 일자리 확대와 임금 상승, 복지 확충을 통한 소득 증대가 소비를 확대하고 투자를 견인해 포용적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변양균에게 기업가 정신에 입각한 혁신 생태계 창출이 중요하다면 홍장표에게는 서민의 소득 증대를 위한 방책이 중요할 것이다.

문재인정부 3개월은 새 정부의 노선이 홍장표 노선임을 보여준다. 국정 100대 과제를 보더라도 혁신의 파동을 위한 창조적 파괴의 관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소득 증대 요법’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획기적 인상,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가계부채 부담 경감, 기초연금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첫 방문지로 인천공항을 선택해 비정규직 1만명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것은 그 상징이었다. 변양균 노선이었다면 노동의 유연안정성을 목표로 유연성 개혁과 노동 복지 인프라 정비를 동시에 추진했을 것이다. 반면 홍장표 노선에서는 유연성은 빠지고 안정성만 부각된다. 이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나라들이 가는 길과는 분명 다르다.

소득 주도 성장론이 모델로 삼고 있는 국가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이다. 훌륭한 국가들이지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따라 할 것인가는 잘 살펴야 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역사적으로 두 개의 단계를 거쳐 왔다. 첫째가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성장과 복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 통합형 국가 모델을 만들었던 복지국가 1.0의 단계이고, 둘째가 재정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강력한 개혁을 통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복지국가 2.0의 단계다.

복지국가 1.0은 복지 확충을 위한 재정의 적극적 확대, 강력한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고부담 고복지, 생산성 임금제에 기초한 소득 향상과 제조업의 경쟁력 확보 등이 골간이었다. 복지국가 2.0은 90년대 초에 몰아친 복지국가 1.0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구축된다. 그것은 재정 확대가 아니라 재정 긴축 및 건실화를, 보편적 복지 확대가 아니라 일하는 복지로 복지부담 축소를, 혁신 드라이브와 교육 개혁으로 성장동력 회복을 겨냥한 것이었다. 스웨덴의 경우 93년 재정적자 폭이 GDP의 11.2%에 달하던 것이 2010년에는 적자 없는 재정을 달성했다. GDP 대비 부채도 90% 수준에서 50%로 줄였다. 긴축과 경제 활성화가 그 대안이었기 때문에 이들 나라는 꾸준히 법인세 및 소득세를 인하하고,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했다. 일하는 복지로 전환해 95년에서 2007년까지 북유럽 나라들의 복지비용은 GDP 대비 30% 내외에서 25% 내외로 5% 포인트 정도 줄었다. 성장동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혁신 클러스트 중심의 연구·개발 투자와 산학 협력,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배가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국가 2.0도 성공시켰다. 복지국가 1.0, 2.0 가릴 것 없이 그 모든 변화에는 노사 타협, 협치, 사회적 신뢰에 의거한 합의제 민주주의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었다.

지난 석 달을 보자면 새 정부의 노선은 복지국가 1.0 따라하기로 비친다. 복지국가 2.0에 대해서는 눈 감는 느낌이다. 지금 복지국가 2.0의 어떤 나라도 정규직만 쓰라는 정책이나 공공부문을 늘리는 정책이나 재정을 빨리 확대하는 정책을 쓰지 않는다. 혹시 복지국가 1.0을 다 한 뒤에야 2.0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그건 지혜롭지 못하다. 대한민국의 발전이 후발성 효과를 극대화하는 압축비약형이었다면 복지국가 따라하기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 2.0은 홍장표 노선보다는 변양균 노선과 일맥상통한다. 글로벌 경제 생태계의 특성을 먼저 고려하고, 개인과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높이면서 거기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들을 연계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전형적인 복지국가 1.0 슬로건인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삶의 질에 투자하는 국가’라는 복지국가 2.0의 슬로건이 필요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모델을 쫓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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