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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류길재] 제재 강할수록 협상공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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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국제사회가 또다시 제재의 채찍을 들었다. 2371호 채택으로 2006년 시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8개로 늘었다. 미사일 발사 이후 결의안 찬성에 소극적이었던 중·러도 동참했다.

북한산 석탄 수출 전면금지 등을 담은 조치로 북은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재로 북이 행동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난 십여년간 가해진 제재에도 북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해 온 역사가 근거다. 그래서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제재 무용론도 계속 나온다.

경제제재는 북의 나쁜 행동에 국제사회가 가할 수 있는 즉각적인 보복 처벌이다. 안보리의 만장일치는 북의 외교적 고립을 뜻한다. 북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국제사회가 취할 수밖에 없는 응분의 조치다. 이것이 제재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다. 도발과 위협을 용인한다면 유엔과 국제사회는 무능력과 각자도생의 정글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결과밖에 안 된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석 달 동안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고, 회담을 제의했음에도 북이 이를 거부하고 미사일 도발을 잇따라 감행하자 압박 정책도 구사했다. 한·미 연합 미사일 훈련을 비롯해 전임 정부 못지않은 강한 대응을 보였다.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미 공조에도 적극 나섰다. 그래서 진영 내에서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북의 도발적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듯이 보수·진보 정부를 가려가면서 취해지지 않는다. 김정은의 셈법은 핵·미사일을 손에 넣고 보자는 것임이 판명됐다. 어떤 제재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중국의 회유와 강권에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만일 중국이 송유관을 틀어막고 장장 1200㎞에 이르는 북·중 접경지역을 철저하게 봉쇄한다면 북이 손을 들까. 중국은 이러한 대북 경제봉쇄를 안 하나, 못 하나. 아마도 중국은 북이 손을 들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북 내부 혼란이 나중에 중국에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천안문 망루에 올랐어도 중국의 대북 제재가 진전되지 않은 까닭이고, 트럼프 정부가 미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 카드를 내밀어 중국을 압박해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는 가해야 한다. 제재를 가해야 나중에 올지 모를 대화 국면이 힘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김정은의 행태를 보면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제재 결의안이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재가 아플수록 협상 공간은 넓어진다. 국면 전개에 따라 협상 여지를 보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 아무 때나 대화를 얘기한다고 해서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압박과 관여를 동시에 추구해도 제재할 때는 제재에, 협상할 때는 협상에 방점을 찍는 유연함이 필수적이다.

정책을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첫째 합리적이어야 하고, 둘째 충분한 소통이고, 셋째 진정성 즉 의지이다. 이렇게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북한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정책 관련자들도 다양하다. 북도 있지만, 국제사회와 국내사회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행동이 과정의 정당성을 가질 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9일 미국령 괌을 포위 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이후 워싱턴 불바다 협박을 해 왔던 북이니 말 폭탄 수위가 높아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북에 말로 응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북이 원하는 바다. 실행에 옮기지 못할 구상이나 급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북을 대상으로 해서는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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