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지방분권과 인구절벽 기사의 사진
고추 농사와 담배 농사가 힘들다는 건 대학 다니던 시절 알았다. 여름방학에 농촌봉사활동을 갔던 곳이 경북 영양군과 봉화군이었다. 기억 속 영양은 고추 밭이 많았고, 봉화엔 담배 밭이 지천이었다. 농촌봉사활동을 가는 시기는 고추와 담배 수확이 막 시작되는 즈음이었다. 뙤약볕 아래서 고추를 따다 보면 날씨만큼 매운 기운이 올라와 숨쉬기가 힘들었고, 담뱃잎을 만지다 보면 땀과 섞인 끈적끈적한 진액이 몸에서 묻어나왔다.

문득 옛 기억을 떠올린 것은 ‘경북 영양이 지자체 중 인구 꼴찌’라는 뉴스 때문이다. 주민 숫자로 봤을 때 전국 243개 자치단체 중 영양군은 242위다. 하지만 243위인 울릉군이 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양군이 사실상 꼴찌인 셈이다.

농활 당시만 해도 영양읍내는 꽤 활기가 넘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서울보다 면적이 더 넓은 군의 전체 인구가 겨우 1만70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영양군은 적은 인구를 홍보하듯 ‘인구 감소지역 통합지원’ 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됐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국비와 지방비 등 23억여원을 투입해 ‘인구지킴이 민관공동체 대응센터’를 운영하고 2025년까지 인구 2만명을 회복하겠다”고 했다. 군 단위 지자체가 10년 가까운 장기 과제로 내세운 목표가 인구 2000여명을 늘려 2만명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라니. ‘웃픈’(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얘기지만 영양군은 퍽 진지하다.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 영양군이 8년 후 인구 2만명을 회복하려면 매년 인구가 300명가량 늘어야 한다. 현실은 매년 300명가량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 분석 결과 현재의 인구 감소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2049년 영양군 인구는 9752명으로 예측됐다.

권영택 영양군수는 보도자료를 낸 이유에 대해 “산골 오지의 인구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고 (일부러) 알린 것”이라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수도권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산이 전체 면적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영양군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수도권과 일부 도시 몇 군데를 제외하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충남 공주시는 며칠 전 인구 추이가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자랑했다. 7월 말 기준 인구가 10만8981명으로 6월 말보다 15명 늘었다는 것이다. 공주시는 인구가 15명 늘었다는 게 보도자료를 낼 일인가에 대해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던 상황에 비하면 반길 만한 결과”라고 답했다.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문 고등학교가 몰려 있는 공주시는 영양군과는 환경이 사뭇 다르다. 옛 백제의 도읍으로 유적지와 이름난 관광지가 있고 면학 분위기도 좋다. 세종시에서 지내며 정부세종청사를 1년6개월 남짓 취재했는데 가끔 공주를 왕래할 때마다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시에서 선정한 ‘공주맛집’ 식당들은 압권이었다. 그런데도 인구는 계속 줄어든단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초등학교 교사를 105명만 채용하겠다고 하자 서울교대생들이 시위에 나섰다. “서울에만 남겠다는 이기주의”라는 지적이 나왔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다수가 지방보다 서울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교대생들은 서울교육에 특화된 인재’라는 일부의 주장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기저기서 지방분권이나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지방에 사람이 없다면, 권한을 나누고 함께 발전해야 할 지방의 실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인구절벽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지방 기초단체의 고민을 정부가 더 깊이 느꼈으면 좋겠다. 더불어 지방에서 살면 마치 경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생각하는 세태의 인식도 교육당국과 함께 들여다봤으면 한다. ‘지방=패배’라는 등식이 국민의 잠재의식 속에 있다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하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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