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강남은 블랙홀인가 기사의 사진
‘경축! 영동대로 천지개벽 수준 개발계획 확정. 지하-잠실야구장 30배 지하도시, 지상-서울광장 2.5배 크기의 대형 광장.’

서울 강남구 일대에 나부끼는 현수막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눈에 많이 띈다. 단체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내용은 똑같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영동대로 통합개발 계획안 후 일제히 붙여졌다. 초대형 호재를 만난 지역주민들의 기대가 묻어난다. 8·2 부동산 대책에도 아랑곳없이 이 일대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고 매물도 자취를 감췄다. 현수막 내용대로 개발안은 ‘천지개벽’ 수준이다. 2023년까지 서울 삼성동 일대에 대형 광장이 조성되고 주변에 즐비한 고층빌딩 지하층과 연결된 거대한 지하도시도 만들어진다. 지하 6층에 16만㎡ 규모의 국내 최초 입체복합환승센터도 들어선다.

삼성동 코엑스 맞은편에는 현대차의 신사옥(GBC)이 이미 예정돼 있다. 2014년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한 현대차는 이곳에 높이 569m, 105층의 신사옥을 올린다. 국내 최고층인 잠실 롯데월드타워(555m)보다 14m 더 높다. 계획안대로라면 2021년 완공된다. 1㎞ 남짓 떨어진 잠실종합운동장에는 대규모 전시·컨벤션 시설과 1000실 규모의 비즈니스호텔 등이 생긴다. 10만㎡ 이상이다. 지난해 4월 계획안에 따르면 2025년 완공이 목표다. 코엑스∼GBC∼잠실종합운동장으로 이어지는 일대에 세계적 수준의 마이스(MICE, 회의·관광·전시·이벤트) 단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같이 강남의 지형을 바꿔놓을 청사진들이다. ‘천외(天外) 도시’ ‘마이스의 진수’ 등 자극적 단어들이 난무할 법도 하다.

강남의 도약과 비상은 5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4대문 안을 포함한 한강 이북 지역에 쏠린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개발된 곳이 강남이다. 당시에는 영등포의 동쪽이라 해서 ‘영동(永東)’이었다. 강북 의존적인 베드타운 성격을 띠었던 강남의 대변신은 1970년부터다. 한수남쪽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편리한 교통 환경에다 명문 학교·학원까지 갖춰지면서 거대한 공룡으로 커갔다. 소설가 황석영은 장편소설 ‘강남몽’에서 강남을 돈과 권력의 욕망이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그렸다.

그렇게 강남은 성장 과실을 독점적으로 향유했다. 인구 변화를 보면 뚜렷하다. 서울 인구는 70년 550만명에서 99년 1030만명으로 거의 두 배 늘었다. 강북 인구가 430만명에서 520만명으로 증가한 데 비해 강남 인구는 120만명에서 510만명으로 증가했다. 이 시기 늘어난 인구 가운데 81%가 강남에서 증가한 것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땅값은 폭등했고 강남에 대한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여건만 허락하면 누구나 한번쯤 가서 살고 싶은 ‘선망의 땅’으로 변해갔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대전(대치동 전세)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그러는 사이 강남북의 격차는 아파트 가격만큼이나 벌어졌고 지역 간 위화감도 늘어갔다. ‘뉴타운사업’ ‘U턴 프로젝트’ 등 간격을 좁히기 위한 시도도 없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어느새 ‘하나의 도시’ 속 ‘두 개의 도시’가 돼 버릴 정도로 두 지역의 불균형은 심각하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결국에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집값 폭등의 시발점도 언제나 강남이다. 강남 쏠림 현상을 해소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떠한 부동산 정책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해답은 자명하다. 균형 발전을 핵심적 국가 발전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조화로운 도시(Harmonious Cities)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공간적, 사회적, 환경적 조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조화로운 도시 개발을 위한 도시 계획이 이어져야 한다.” 유엔 산하 기구인 해비타트(Habitat)가 제시한 해법이다. 강남과 강북이 공존하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 아닐까.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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