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서울 불바다 기사의 사진
“서울은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될 것이다.” 1994년 3월 19일 8차 남북 접촉이 진행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박영수 북측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다. 목소리는 격앙됐다. 그는 남측 대표 송영대 통일원 차관에게 “송 선생도 살아나기 힘들어요”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불바다의 시작이었다. 당시 신문은 “회담 시작에 앞서 덕담도 없었다. 험악했다”고 전했다.

23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아슬아슬하다. 전쟁위기론까지 나돈다. 불바다 협박은 서울에서 남한 전역으로, 이어 괌까지 확장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남반부 종심에 대한 전면 타격과 괌 주변에 포위사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CNN은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앞서 있었던 트루먼 발언을 상기시키며 “최후통첩”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과장된 레토릭’이라는 평가도 있다. 짖는 개 물지 않는다는 속담 때문인지 우리는 느긋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 내부 결속용”이라고 일축했다. 여·야 정치권 인식엔 큰 차이가 있다. 네티즌 사이에도 갑론을박이 뜨겁다. 국민들은 대체로 차분하다. 외신은 이런 한국 내 상황을 ‘놀랄 정도로 심드렁한(surprisingly blase)’이라고 전했고, 심지어 ‘주식 매수 타이밍으로 인식한다’고 비꼬기까지 했다.

현대전엔 승자가 있을 수 없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공멸의 길에 들어선다. 누가 전쟁을 원하겠는가마는 과장된 위기론이나 근거 없는 낙관론 모두 위험하다. 치명적인 상황은 정치적 이해가 개입하면서 국론이 분열됐을 때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이 단적인 예다. 적은 내부에 있고, 준비된 자에게 위기는 없다는 게 두 번의 치욕적 역사가 증명한다. 지금 그때를 닮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통해 운전석에 앉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여 지났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쯤 달려가고 있는가.

박현동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