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차가운 지성으로 그린 인물화 기사의 사진
게르하르트 리히터 ‘Reader’, 1994.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머리를 질끈 묵은 금발의 소녀가 무언가를 읽고 있다. 시사주간지에 실린 뉴스를 보고 있는 걸까? 소녀의 등 뒤로 강렬한 조명이 비춰, 가느다란 목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인물의 측면을 부각시킨 구도, 갈색으로 화면을 통일한 색채 선택이 싱그럽다. 마치 한 장의 스냅사진 같은 이 아름다운 유화는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85)가 외동딸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같은 회화’를 시도한 것은 작가가 택한 전략이다. 리히터는 주관적 감흥에 따라 대상을 묘사하는 회화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사진에 기반한 회화를 시도했다. 사진 속 이미지를 최대한 그대로 옮김으로써 사진 고유의 시각적 특성을 살린 후, 부드러운 붓으로 윤곽선을 문지르거나 초점을 흐릿하게 해 실재성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실험은 현대회화에 있어서 ‘재현과 일루전’이란 요소를 돌아보게 한다.

리히터는 개념미술, 행위예술이 광풍처럼 번져가던 상황에서도 전통장르인 회화를 놓지 않았다. 자신의 ‘사진회화’가 호평을 받았음에도 추상과 구상, 채색화와 단색화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영역을 끈질기게 확장시켰다. 그 결과 세계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섰다. ‘살아있는 작가 중 가장 작품 값이 비싼 작가’라는 타이틀도 따라붙었다. 리히터의 대표작인 ‘Reader’는 10월에는 소장처(샌프란시스코미술관)를 잠시 떠나 호주 퀸즐랜드로 나들이를 한다. 걸작은 늘 팬이 많게 마련이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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