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손병호]  北 최선희의 2005년과 2017년 기사의 사진
요즘 북한과 미국 간 ‘대화’의 핵심 창구로 떠오른 최선희(53) 북한 외무상 미국국장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9·19 공동성명’을 도출한 2005년 6자회담이 이뤄지던 중국 베이징에서다.

3주 정도 이어진 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은 회담을 마치고 저녁에 북한대사관으로 돌아갈 때 대사관 정문 앞에서 수시로 벤츠를 세웠다. 그리고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김계관이 말하면 바로 옆에서 최선희가 영어로 통역했다. 당시 대사관 앞에는 기자들 50명이 늘 죽치고 있었다. 일본 기자 60%, 한국 기자 10%, 중국 기자 10%, 영어권 기자 5%, 러시아 기자 5% 정도였다. 그 영어권 기자 5%, 주로 AP통신과 CNN방송 기자를 겨냥해 최선희가 나선 것이다.

영국식 영어가 섞인 최선희의 발음은 다소 투박했지만 영어 구사력은 아주 뛰어났다. 김계관이 한번에 3분을 넘기며 장황하게 설명해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잘도 통역했다. 일부 알아듣기 어려운 김계관의 이북말 가운데 놓친 부분을 최선희의 영어 통역에서 보충해 적은 기억이 있다.

최선희는 그 즈음 김계관이 탕자쉬안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날 때도 통역으로 나서 중국어 실력도 특출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 여기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방북했을 때도 통역으로 등장했다.

전문 통역사인 줄 알았던 최선희는 어느 날 미국국 부국장으로 나타났고, 이후에는 다시 국장이 되더니 근래에는 각종 북 미 간 1.5트랙(반관반민 대화체) 회담의 대표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미니 6자회담’ 격인 동북아시아협력대회(NEACD)에 대표로 참석했다.

최선희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지난 5월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미국인 석방 문제를 비밀리에 협상한 일이 알려지면서다. 이 만남을 계기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석방됐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달에는 최선희의 8월 말 방미를 추진하려다 북한에 남은 미국인 3명의 석방 문제가 진전되지 않아 일단 보류시켰다.

최선희가 대화의 창구로 부상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최선희는 유럽과 중국 등지에서 유학해 북한 밖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내각총리를 지낸 최영림의 수양딸로 ‘백’도 든든하다. 경제통인 최영림은 현재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선희가 유럽에서 유학한 김정은에게 직보할 수 있는 인사라는 얘기도 있다.

북한과 미국이 최근 격한 말폭탄을 주고받은 뒤 대화의 문이 열릴지, 그 반대의 상황이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대화를 한다면 최선희가 창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에 북한 인민군 차수인 조명록(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방미해 군 출신답지 않게 온화한 인상과 절도 있는 매너로 워싱턴 외교가에 좋은 인상을 남긴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극히 드문 고위급 여성 외교관이면서 영어가 유창한 최선희도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것이란 기대가 든다. 조명록에 반한 미국은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답방 형식으로 평양에 보내며 해빙 무드를 조성했다.

미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의 괌 사격 ‘일단 보류’ 움직임이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놓고 “양측이 협상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이 기회를 잘 살려내길 바란다. 미국은 지난달 발급을 거부한 최선희의 미국 비자를 내줘 대화의 물꼬가 트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도 이제는 핵·미사일 시험 동결, 한국인 및 미국인 억류자 석방 등의 문제들에 결단을 내릴 때다. 그런 뒤 정상적인 외교 테이블에서 협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 미사일과 선제타격이 아닌 ‘외교’가 중심에 서기 좋은 때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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