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잃어버린 18년 기사의 사진
두 해 전 독일 문학계의 거장 귄터 그라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소설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20세기에 나온 모든 문학작품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했다. 양철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20세기가, 그리고 그런 20세기의 한복판에 있던 인간들이 얼마나 야만적인 광기에 휩싸여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주축 국인 독일과 그런 독일을 낳은 독일 국민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이를 위해 작가는 ‘왜소증’에 걸린 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인공 오스카는 세 살 때 추락사고로 성장이 멈췄다. 그해, 곧 1927년은 귄터 그라스가 태어난 해이자 히틀러의 나치당이 독일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급격히 세력을 불려가던 때다. 그러니까 작가에게 오스카는 독일 국민 일반에 대한 은유인 셈이다. 나치의 광기 어린 선동 앞에 비판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속수무책 넘어간 독일 국민들의 ‘생각 없음’이 오스카의 ‘성장 지체’로 풍자되고 있다. 독일 국민에는 당연히 작가 자신도 포함된다. 그 역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10대 때 나치 친위대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을 통해 1927년부터 1945년까지 18년 동안 독일 국민이 우파 민족주의라는 귀신에 씌어 히틀러의 광대가 돼 ‘놀아났음’을 자기 성찰적으로 고발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날선 비판은 전후 독일과 독일인에 대해서도 한 치의 에누리가 없다. 전쟁이 끝난 뒤 오스카의 등에 돋아난 기이한 혹은 독일의 전후 세대가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무를 암시한다. 독일 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독일인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부끄러운 역사 앞에 참회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귄터 그라스가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 전야제의 축시 낭송을 부탁받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판문점에 들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더불어 그는 이 땅의 문학이 분단과 통일을 담아내지 않는 한 문학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준엄한 질책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반도의 역사현실에 대해 예민한 촉수를 세우고 있던 그이니 만큼 당시 일본 정부의 초청을 거부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한 결코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

광복 72주년을 맞이한 이때, 불현듯 우리의 ‘잃어버린 18년’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1927년은 신간회가 해산된 해로 기억된다. 제1차 좌우합작 운동이 무산된 그때로부터 18년이 지나 해방이 찾아왔다. 그토록 바라던 해방이 왔건만 어째서 김구 선생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고 한탄했을까. 함석헌 선생의 표현대로 ‘도둑처럼’ 온 해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힘으로 얻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주어지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땅은 이내 미국과 소련의 분탕질에 휘말려 허리가 잘렸다. 역사학자 박정신이 지적한 대로 ‘뒤틀린 해방체제’ 아래서 우리는 지금껏 주권을 마음껏 행사하지 못한 채 강대국들의 입김에 놀아나는 불안한 삶을 꾸리고 있다.

누가복음 13장에는 안식일에 예수가 허리 굽은 여인을 치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그 여인의 허리가 굽어 있던 세월 역시 ‘18년’이다. 본의 아니게 남 앞에서 굽실거리고 살아야 했던 여인이 예수를 만나 허리를 세우게 됐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한반도의 허리는 언제쯤 펴지려나. 이 땅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이 ‘온전한 해방’의 춤을 출 날은 언제일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안식일은 없다. 아니 그날을 그리워하며 우리의 일상에 하늘빛 평화를 수놓아가는 모든 순간이 안식일이다.

구미정(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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