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창욱] 사랑이라는 상상의 출구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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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했다. 또 사랑 운운할 것인지. 세상엔 말할 것, 말해야 할 것, 말해지지 않은 것이 널렸건만 왜 번번이 동어반복이 돼버릴지도 모르는 사랑 타령만 하고 마는가. 종잇장에 뭐든 써야 할 차례가 돌아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애써 외면한 채 마감 시한에 거의 다다르기까지 표류하는데, 기자에게 마감이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탈출부터 해야 하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것이라서 거기에 임박해서는 일단 살겠다고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쥐어짜게 된다. 지난해 말부터 2∼3개월마다 부려놓은 사랑에 관한 주저리도 그 ‘살고 보자’는 펜 끝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때마다 시사적이어야 할 신문에 기자의 글로서 가당한지 확신하지 못하다가, 확신하지 못한 채로 맺었다. 그러고는 또 할 참이니 나는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글을 쓴 게 그동안 세 번이다. 그 글들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괄호 안은 제목). 사랑은 늘 지난 뒤에야 깨닫는 회한의 추억이고(그건 사랑이었네), 진행 중일 때는 뜻대로 풀리지 않지만 포기하지도 못하는 난제이면서(어쩔 수 없는 일), 내부를 보면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지 의문스러운 자기암시적 속박인지도 모른다(누구를 위해 사랑을 주장하나), 라고. 나는 이 사랑 운운이 남녀상열지사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지만 진술이 범박한 탓에 고상한 바람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 글을 일일이 해설하는 건 구차한 짓이다.

나는 뭔가를 쓰면서 계통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소관 업무를 떠나서는 계통 있는 글을 써본 적이 없고 그런 글에 욕심도 없다. 그런데 “트릴로지(3부작)를 완성했는데 이젠 뭘 쓸 거냐”는 한 동료 기자의 말을 듣고는 뭐랄까, 수습 같은 걸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드는 것 아닌가. 영화로 보자면 자고로 3부작은 인기 시리즈물의 미덕이자 마지노선이다. 4편부터는 거의가 사망의 골짜기다. 영화감독들이 3편 다음에 에필로그 작품 따위를 내놓는 건 아니고, 앞으로는 다른 얘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마구잡이식으로 벌여놓은 글들에 허약하나마 뼈대를 세워줄 필요를 느낀다. 그 작업은 내가 왜 사랑이라는 주제에 거듭 골몰하는지에 대한 자문-자답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하는 형식면에서와 마찬가지로 내용면에서도, 글쓰기는 출구를 찾는 일이다. ‘살자’는 일념으로 사유라는 노 젓기를 통해 위기에 처한 나와 너의 출구를 찾아 헤매는 일. 나는 그 출구로서, 아득하지만, 사랑만한 것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만인이 만인을 뜯어먹는 시대에 아귀(餓鬼)적 허기나 다름없는 저 모든 유형의 전의를 무력화할 수단은 사랑밖에 없지 않은가.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가 되지 않을 길 말이다.

물질적 진보를 채찍질하는 동력이 욕망이라면 사랑은 욕망의 브레이크이자 정신적 진보의 가속 페달이다. 욕망은 경쟁을 무릅쓰고 더 가지고자 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길 수 있는 경쟁을 포기하고 가진 걸 내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욕망은 대체로 위험하고 사랑은 늘 안전하다. 욕망은 나를 위해 너를 피 흘리게도 하지만 사랑은 너를 위해서라면 나의 출혈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네가 아플 때 나는 ‘내가 아님’으로 안도하지만 사랑하는 네가 아플 때는 ‘왜 너인가’로 신이 원망스럽다.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있고 없음으로 ‘우리’라는 세상은 이렇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나 시대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면 욕망과 사랑 중 어느 것을 심장으로 삼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자꾸만 욕망(의 일)이 사랑(의 일)에 우선하고, 압도당한 사랑의 일들은 법의 힘을 빌려서도 지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그게 자본주의의 정의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루저를 가려내는 사회, 루저를 만들어내는 사회, 시도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루저로 인식하게 하는 사회가 온당한 공동체일 리 없다.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문명사회에서 사회구조의 귀책사유를 따지는 일은 부당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인간적인 것’을 고민하며 결국 너와 나인 공동체가 욕망이 아니라 사랑을 심장으로 삼도록 재우쳐야 한다. 이렇게 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나는 사랑을 출구로 삼고도 거기에 이르는 최단거리는 모른다. 사랑은 아직 상상의 출구일 뿐이다. 그러니 일단은 영원한 맨바닥을 더듬으며 계속 지도를 그려나가는 수밖에.

강창욱 산업부 기자 kcw@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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