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한 교회와 성당 첨탑, 종교화합 상징하는 듯… 중세 종교분쟁 격전지 레겐스부르크를 가다

나란한 교회와 성당 첨탑, 종교화합 상징하는 듯… 중세 종교분쟁 격전지 레겐스부르크를 가다 기사의 사진
독일 바이에른주 레겐스부르크 루터교회인 노이파교회. 발칸 북쪽지역 개신교 신앙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왼쪽 뒤로 성페터대성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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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에서 기차로 1시간을 달리자 레겐스부르크 중앙역에 닿았다. 높이 솟은 교회와 성당의 첨탑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선정된 이곳은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어우러진 곳으로 유명하다.

“오랜 종교적 분쟁 끝에 지금 이곳은 가톨릭과 개신교, 유대교가 화합하는 장이 됐지요.”

지난 8일 현지를 함께 탐방한 기독교한국루터회 최준혁 준목의 설명이다. 최 준목은 레겐스부르크대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올해 말 귀국 예정이다.

레겐스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향을 받는 바이에른주의 핵심 도시이자 게르만인과 로마인의 접경지대였다. 바이에른주의 어원이 야만을 뜻하는 ‘바바리안’에서 나왔듯이 바이에른주의 주요 도시인 레겐스부르크는 로마인들에게는 개척의 땅이었다.

‘슈타이네르네 브뤼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를 건너봤다. 지금도 사용되는 이 다리는 1135년 지어졌다. 켈트 지역 무역물자를 도나우강을 거쳐 로마 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톨릭의 선교 전초기지였던 성페터대성당도 볼거리였다. 1250년 건축이 시작된 이 성당은 하늘을 향해 건물을 높게 짓고 기둥을 많이 둬 웅장함을 더하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첨탑은 아치 등 장식적 요소를 활용해 화려함을 더한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됐다. 2009년 레겐스부르크대 교수로 있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도움으로 설치된 건물 3층 높이의 오르간도 눈길을 끌었다.

레겐스부르크는 16세기 독일 전체 유대인의 4분의 1이 거주했던 도시다. 도나우강을 활용한 상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기 시작했고 1519년 유대교 회당은 불타버리고 말았다. 회당 터에는 2005년 이스라엘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 흰 기둥들이 눈에 띄었다.

유대교 회당 터 앞에는 레겐스부르크의 첫 루터교회이자 발칸 북쪽지역 개신교 신앙의 출발점인 노이파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1542년 지어진 교회 안에는 유대교 회당의 재건축 과정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거둔 헌금으로 유대교 회당의 재건축을 돕고 있었다.

17세기 가톨릭과 개신교가 충돌한 종교개혁 역사의 흔적은 삼위일체교회에 남아 있었다. 이 교회는 도미니카성바실리우스성당으로 불리던 가톨릭 성당을 1627년부터 루터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최 준목은 “성당에서 쓰였던 제단과 성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당시 많은 루터교회가 성당을 개조하면서도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힘써왔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개신교와 가톨릭간 돋보이는 교류는 현재진행형이다. 노이파교회 성도들은 이웃 가톨릭 성도들과 함께 성경공부와 성지 견학 등을 하며 교류하고 있다고 최 준목은 소개했다. 양 종단간 공존이 이뤄지게 된 계기는 1541년 신성로마제국의 레겐스부르크 제국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 카를 5세는 이 회의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를 위해 레겐스부르크 종교 회의를 개최한다. 개신교 대표자로는 장 칼뱅과 필립 멜란히톤, 가톨릭 대표자로 요하네스 에크 요하네스 그로퍼 등이 모여 ‘두 개의 칭의론’이라는 타협안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서로의 종교를 레겐스부르크 안에서 공존토록 논의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카우프 호프 쇼핑센터 옥상에서 바라보는 레겐스부르크의 하늘은 교회와 성당의 첨탑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격렬하게 부딪쳤던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마음, 화합이 아니었을까.

레겐스부르크(독일)=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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