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상식’ 따뜻한 ‘내면’… ‘김명수 판결문’ 분석해보니 기사의 사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이 22일 오후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는 관용차를 타지 않고 시외버스와 지하철로 춘천에서 대법원까지 갔다.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그는 “(청문회에서) 어떤 수준이고 모습인지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21일 지명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진보 성향 판사로 분류돼 왔다. 삼성에버랜드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정지한 판결이 근거였다.

김 후보자가 과거사 피해자나 노동자의 손만 들어준 건 아니었다. 인권의 확대를 고민하는 동시에 사회적 상식을 존중했고, 보수적 판례를 인용하면서 절충의 여지를 찾았다.

그간 드러난 사법개혁의 철학과 파격적 인선이란 평가에 비해 실제 김 후보자의 판결들은 오히려 무취한 편이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배경만으로 김 후보자를 바라볼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한 법관은 “개인적 신념과 직업적 양심은 구별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2011년 6월 오송회 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가 156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심이 주문한 207억여원보다 크게 줄어든 액수였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교사들이 전북도경 대공분실에 연행돼 갖은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된 과거사다.

2심의 배상금 감경은 위자료의 이자 격인 지연손해금의 발생 시기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1심이 피해자들이 체포된 1982년 11월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했다고 판결한 반면 김 후보자의 재판부는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11년 5월을 그 기점으로 봤다. “덮어놓고 불법행위 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보면 현저한 과잉배상 문제가 제기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논거로 든 판단이었다. 크게 뛴 물가와 국민소득수준 등 통화가치 변화까지 고려한 결과였다.

김 후보자는 이 때문에 고통이 커질 피해자들을 애써 배려했다. 원금에 해당하는 위자료의 경우 1심보다 훨씬 큰 금액을 산정한 것이었다. 1심에서는 위자료가 109억원 수준이었지만 2심에서는 155억여원이 인정됐다. 김 후보자는 당시 “약 29년간 배상이 지연됨에도 그 기간에 대한 지연손해금이 전혀 가산되지 않게 된다는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 후보자는 1991년 실종된 ‘개구리 소년’의 부모들이 2002년 유골 확인 뒤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낸 손해배상 소송을 1심에서 기각하기도 했다. 소년들의 유골이 뒤늦게 발견됐지만 4차례나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이 형식적 수색만 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단은 대법원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노동조합의 권익을 보호하는 판결을 여럿 내린 김 후보자였지만 노동계의 급진적 주장까지 전부 수용하진 않았다. 그는 육아휴직 중 딸을 어머니에게 맡긴 채 남편과 8개월여 멕시코에 체류한 여직원에게 지급된 급여를 부정수급으로 판단했다.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채 국외에서 경제적 지원만 한 사람이 실질적 양육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었다. 앞선 1심 재판부가 “육아휴직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장려 및 직장·가정의 양립을 목적으로 한다”며 여직원의 육아휴직급여 제한 및 반환, 추가징수 처분을 취소한 것과 대비됐다.

김 후보자는 2008년 창단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가입금 납부 문제로 분쟁을 일으켜 스폰서 계약을 해지당한 히어로즈 프로야구단에 후원금 잔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1심은 히어로즈가 구단 명칭과 유니폼, 헬멧에서 ‘우리’ 표기를 삭제한 것을 우리담배 등과 관계를 단절하기로 선언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이 같은 삭제가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판단했다.

김 후보자는 부대 내 농구대회와 유격훈련 중 발목을 접질려 수술한 육군 장병이 공상군경으로서의 상이 인정 요건을 갖췄다고 보는 등 군인의 국가유공자 자격을 다수 인정했다. 군부대 내에서 동료 여직원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여준 군무원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도 내렸다. 상대가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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