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하게, 아찔하게… 거친 물살을 가르다 기사의 사진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의 수락폭포에서 안전장비를 갖춘 여성 등반가가 로프에 의지해 솟구치듯 내리꽂는 폭포수를 온몸으로 맞으며 암벽을 내려가고 있다. ‘비밀의 계곡’ 같은 경반계곡은 계단을 이루며 흐르는 물길과 아담한 소(沼)가 많아 캐니어닝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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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같은 비가 이어지면서 여름 휴가를 제대로 못 보낸 사람들이 많다. 이번 주말은 비소식 대신 맑은 날이 예보돼 있다. 휴가 시기를 놓치고 여름 내내 도심에서 더위와 씨름했다면 늦은 휴가를, 피서를 다녀왔어도 비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면 주말을 이용해 가까운 곳으로 가볍게 추가 휴가를 다녀와도 좋을 듯하다.

서울에서 가깝게 떠날 곳으로 경기도 가평이 제격이다. 가평은 서울의 1.4배가 되는 넓은 지역으로 곳곳에 근사한 여행지와 휴식처들을 숨겨 놓은 매력과 보물의 땅이다. 전체 면적의 83%가 산지를 이루며 경기도 제1고봉인 화악산(1468m)을 비롯해 명지산(1267m)·석룡산(1153m) 등 높고 아름다운 산을 품고 있다. 산이 많으니 폭포와 계곡도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 가운데 아직 덜 알려진 ‘비밀의 계곡’이 있다. 경반계곡이다.

거울 경(鏡), 큰 돌 반(盤). ‘거울 같은 반석’이라는 뜻의 계곡은 서울에서 1∼2시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고, 가는 길마저 험해 ‘대한민국 오지’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서면 ‘한국의 무릉도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선하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과 바위는 쉼터를 내놓고,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은 투명하리만큼 맑다. ‘경기도 속 강원도’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인근에 여름철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용추계곡이 있다. 칼봉산(해발 900m)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둔 용추계곡의 명성에 가려 조금 덜 알려져 한가롭게 물놀이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계곡 물은 칼봉과 매봉 사이에 있는 수락폭포(水落瀑布)에서 시작돼 계곡을 따라 5㎞ 정도 내려오다가 가평천과 합류해 청평 부근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거울처럼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비추며 몸치장을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경반계곡에 이르는 길은 걷기 좋은 임도다. 조금만 걸으면 왼쪽으로 펜션과 민박, 식당이 들어서 있는 ‘백학동 한석봉마을’이 있다. 조선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은 조선 선조 32년(1599년), 초대 가평군수를 지낸 바 있다.

마을을 지나면 계곡을 옆에 끼고 흙길을 걷는다. 차가 다니는 길답게 제법 넓다. 산책하듯 걷다 보면 개울가를 넘는다. 워낙 물이 맑아 잠시 발 담그고 쉬어가기에도 좋다. 40분쯤 걸으면 건물 하나가 나온다. 캠핑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반분교다. 학교 건물 옆으로 알록달록한 텐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는 ‘오지 캠핑장’으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원래 화전민 마을이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학교 인근에 100여 가구가 살았다. 경반분교 학생만 80명에 달했다. 하지만 화전이 금지되고,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나가면서 마을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잣나무가 심어졌다. 1980년대 초 지금의 주인 박모씨가 폐교된 경반분교를 매입했다.

경반분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캠핑붐’과 TV프로그램 덕택이다. 경반분교에서 하룻밤을 지낸 캠퍼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나고 2009년 경반분교에서 촬영한 ‘1박2일’이 방영된 뒤 명소가 됐다.

경반분교 주변 계곡은 깨끗하고 산세는 수려하다. 쉬엄쉬엄 걸어 수락폭포까지 다녀오거나 칼봉산 정상까지 걷기에도 좋다. 경반분교에서 정상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더운 날에는 경반계곡에 발을 담근 채 호젓하게 ‘멍때리기’를 해도 좋다. 산 넘고 물 건너 ‘오지’에 고립된 채 온통 산에 둘러싸여 날것 그대로의 하룻밤을 맞이하면 힐링은 덤이다.

길은 경반사를 거쳐 수락폭포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직진해 회목고개로 오르면 칼봉산 정상까지 갈 수 있고, 왼쪽 등산로를 따르면 깃대봉을 거쳐 북쪽 매봉∼회목고개∼칼봉산으로 가거나 남쪽 대금산(705.8m)으로 오를 수 있다. 가까운 수락폭포까지만 다녀와도 좋다.

계곡에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면 수락폭포가 지척이다. 아찔한 높이의 바위틈에서 내려와 33m 아래로 내리꽂히는 수락폭포는 천둥 같은 소리를 내뱉는다. 바로 밑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명주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 같다. 더운 날이라도 폭포 앞에 서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다.

경반계곡은 캐니어닝(canyoning·계류타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인기다. 캐니어닝은 산간 계곡물을 따라 내려가며 계곡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익스트림 레포츠다. 바위 사이를 지나며 물살에 몸을 맡겨 슬라이딩을 즐기고, 높은 폭포를 만나면 로프에 의지해 거꾸로 솟구칠 듯 웅장한 폭포수를 맞으며 암벽을 내려간다. 경반계곡은 층층이 계단을 이루며 흐르는 물길과 아담한 소(沼)들이 있는 데다 수량이 풍부해 안성맞춤이다. 심장이 쫄깃해질 정도로 아찔하고 짜릿한 스릴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여행메모
칼봉산자연휴양림부터 험한 비포장 도로 캐니어닝은 안전장비와 전문가 지도 필수

경기도 가평군 경반계곡의 수락폭포는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다. '경반분교오토캠핑장' 또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경반리 산 138-1 번지(도로명주소 경반안로 678)'를 검색해 찾아가야 한다.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칼봉산자연휴양림까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승용차도 갈 수 있지만 이후 약 2.5㎞ 구간 비포장도로는 계곡을 4∼5차례 건너야 하는 데다 울퉁불퉁해 4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아니면 걸어가는 게 좋다. 운전실력이 뛰어나도 차 밑바닥을 긁기 십상이다.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경반분교에서 수락폭포까지 걸어서 30∼40분 걸린다. 가는 길에 연인산 임도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지 말고 곧바로 직진해야 수락폭포에 닿을 수 있다. 차량 진입 차단기를 지나면 수락폭포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 임도로 가지 말고 곧바로 계곡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임도를 따라 쉬엄쉬엄 걸어서 칼봉산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객도 많다.

캐니어닝을 하려면 헬멧, 안전벨트, 로프 등 안전장비를 갖추고 경험 많은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기초교육을 받고 주의사항을 잘 지키면 초보자라도 즐길 수 있다.

캠핑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주변에 매점이 없기 때문에 캠핑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가져가야 한다. '오토캠핑장'이지만 전기와 수도시설이 없다. 랜턴을 챙겨야 하고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계곡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도 있다. 경반분교 앞마당이 넓은 편이어서 텐트는 20동가량 칠 수 있다. 예약은 따로 받지 않는다. LG유플러스 외에는 휴대전화도 잘 안된다.

가평=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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