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송세영] 사교육 대책의 실종 기사의 사진
출범 100일을 넘어서면서 문재인정부 주요 정책의 윤곽이 상당부분 드러났다. 과열된 부동산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양도소득세 강화와 대출 규제를 골자로 하는 8·2 대책을 시행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제로화에 시동을 걸었고 최저임금은 대폭 인상키로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기초생활수급자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단계적으로 폐지키로 했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은 2021년도부터 절대평가를 확대하기로 했다.

짧은 시간에 민생 관련 정책을 대부분 아우른 것 같은데 한 가지 보이지 않는 게 있다. 사교육 대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에도 사교육 관련 공약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과도한 사교육을 억제하겠다고 했지만 구제척인 내용이 없었다. 학원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쓴소리까지 들었다.

사교육 대책도 부동산이나 일자리, 복지정책만큼 중요하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를 유발해 사회통합을 해친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새 정부 경제정책에도 역행한다. 사교육비가 늘수록 가처분소득이 준다. 사교육 부담은 출산 기피의 이유 중 하나로도 꼽힌다.

과도한 사교육은 학생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친다. 성인도 하루 15시간, 주 7일간 일하라고 하면 버티기 힘들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공부와 달리 학원이라는 집단적 환경에서 반강제로 공부하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래서 학습노동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청소년기에 쉼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성인이 된 뒤에도 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얼마나 잘 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적절히 쉴 때 노동과 학습의 효율이 올라간다는 연구보고도 많다. 한국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관행도 장시간 학습노동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사교육은 민생 문제일 뿐 아니라 기본권과 인권의 문제이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그동안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사교육도 시장이므로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보수 정권이라면 몰라도 진보 정권에서도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의아한 일이다.

그 이유는 1차적으로 교육 문제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공교육이 바로 서면 사교육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이상적 프레임을 갖고 있다. 입시제도 개혁과 공교육 정상화 방안이 숱하게 나왔지만 하나같이 사교육 의존도 심화로 이어졌다. 선호도가 높은 대학일수록 서울 강남 등 부유층 출신 학생들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졌다. 수능에서 절대평가를 전면 도입하든 단계적으로 도입하든 사교육 시장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교육 불패는 신화가 됐다.

사교육에 대한 직접 규제를 기피해선 안 된다. 공교육 정상화나 입시제도 개혁은 언제 효과가 나타날지, 의도한 대로 효과가 날지 불확실하다.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우선 밤 10시 이후 심야교습과 주7일 교습부터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서울 등 일부 시·도에선 이미 지자체의 조례 등으로 심야교습을 금지하고 있지만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제화를 통해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

주7일 교습은 최근 10년 사이에 급속도로 확대됐다. 처음에는 일요일 오후 2∼3시간 보강을 하는 정도였다가 오후 3∼4시간 정규수업으로 변형됐고 최근에는 하루 8∼10시간씩 교습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학원이나 학생, 학부모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심야교습과 주7일 교습은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자유 경쟁에만 맡겨놓을 때 종종 발생하는 악순환이다. 다음 달 새 정부 교육정책의 밑그림을 그릴 국가교육회의가 출범한다. 하루아침에 교육개혁을 이룰 수는 없다. 확고한 방향성을 갖되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갔으면 좋겠다.

송세영 사회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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