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시를 읽는 오후’ 펴낸 최영미 “명시는 다양한 눈을 갖게 해주죠”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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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56·사진)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로만 기억되는 것이 불행하다고 했다. 또 시인이 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10대 때부터 시를 외웠고 쉰을 훌쩍 넘긴 지금도 시 암송을 즐긴다. 최근 명시 44편을 해설한 책 ‘시를 읽는 오후’(표지·해냄)를 펴낸 시인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원한 원피스 차림이었다.

“이제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징그러워요. 제가 그동안 시집 5권을 포함해 10권이 넘는 책을 냈는데도 책 띠지에는 계속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이라고 나와요. 그 시집 하나로만 기억되는 게 불행하고….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아직도 거기 갇혀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답답함이 묻어났다.

이전에 낸 ‘내가 사랑하는 시’(2009)가 명시에 간단한 해설을 붙인 책이라면 이번 책은 유명 시인의 생애를 소개하고 그의 시를 상세히 설명해 준다. “명시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달라요. 동서고금의 명시는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줘요. 명시를 많이 읽을수록 세계를 다양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죠.”

책에 수록된 44편의 시를 읽어가노라면 이 말의 뜻을 알게 된다. ‘이 놈은 먼저 나를 빨고, 이제 그대를 빨아,/ 이 벼룩 속에 우리의 두 피가 섞였지요’(존 던의 ‘벼룩’ 중) 남녀 간 연애를 벼룩의 몸에 비유한 시다. ‘아내를 여럿 만들지 말고/ 잡지에 기고하지 말고/ 두드러기를 긁지 마라’(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아들에게 주는 충고’ 중)

소설가로 알고 있는 헤밍웨이의 시를 소개한다. 그가 무려 네 번이나 결혼한 여성 편력의 소유자라는 것도. “직업으로 시인을 택한 것을 가장 후회해요. 제 글에는 자신 있지만 시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취약하죠. 영화배우나 외교관이 될 걸 그랬어요.” 실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대학원 논문 쓰느라 바빠서 거절했어요. 조감독이었던 이창동씨가 ‘(영화를 찍으면) 인생이 변할 겁니다’라고 했는데 ….” 시인은 “지금은 단역이라도 출연할 용의가 있다”며 웃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는 시를 잘 읽기 위해 오늘도 불어를 독학하는 ‘어쩔 수 없이’ 성실하고 진지한 시인인 걸.

글=강주화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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