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세상 관습 이기고 하나님 역사 동참한 ‘인류 구원의 모성’

<12·끝> 동정녀 마리아

[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세상 관습 이기고 하나님 역사 동참한 ‘인류 구원의 모성’ 기사의 사진
예수를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오른쪽)가 세례 요한을 임신한 친척 엘리사벳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 이들 둘의 배가 불룩하게 그려져 있다. Web Gallery of Art·National Gallery of Ar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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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사건, 마리아의 놀라운 믿음

2000년 전, 중동의 소국(小國)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결혼을 앞둔 평범한 시골 처녀 총각에게 믿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임신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임신하지 못한 여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기를 갖는 일은 있었지만, 동정녀가 임신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정혼한 이들 처녀 총각은 기상천외한 천사의 말을 믿는다.

예수 탄생에 대해서는 사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를 찾아와 전한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청천벽력이었다. 약혼은 했으나 아직 동침한 적이 없는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는단 말인가. 더구나 낳게 될 아들의 이름까지 정해졌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인다 해도 여자로서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에 약혼녀인 마리아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비신자들은, 혹은 신자들 가운데서도 동정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하물며 이 같은 사건의 주인공이 된 예비부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천사는 요셉을 찾아가 마리아에게 전한 얘기를 그대로 일러준다. 요셉도 천사가 전한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지혜롭게 처신한다. 이어 마리아와 결혼해 부부가 되고, 아기를 낳기 전까지 이들 부부는 동침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혼전 성령 잉태와 해산이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동정녀의 임신을 생물학적 차원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문제는 하나님의 존재성과 연관돼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이다. 동정녀의 임신이 생물학적 논리에 어긋난다고 믿음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그의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면 그는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천사의 말을 믿은 것은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한 여성

하나님의 섭리가 한낱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에게 임했다는 사실에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처신은 신중했다. 마리아는 친척인 엘리사벳을 찾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었던 내용을 전한다. 세례 요한을 임신한 지 6개월쯤 지난 엘리사벳도 자신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임신하게 된 경험담을 꺼내놓는다. 그러자 마리아는 찬양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인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눅 1:46∼49·표준새번역) 인간적으로 황당하고 당혹스럽고 두려운 일임에도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복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의 태도와 처신은 당시 세상의 관습과 구별된다. 결혼 전에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여성으로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여자로서 살아가는 걸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자신의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 이후 처음 일어난, 창조 사역에 버금갈 만한 사건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유대 나라의 작은 시골 처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리아는 ‘인류 구원’이라는 위대한 하나님 사역에 동참한 혁명적 여성이라 할 만하다.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한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뒤 다시 평범한 여자로 돌아갔다. 요셉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예수의 여러 동생을 낳았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를 따라 그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이어간 이들도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낳은 여자가 일상적인 여자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은 마리아의 행적에 대해 예수의 어머니이자 요셉의 아내로서 평범하게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는 여느 어머니들처럼 모정을 지닌 어머니였다. 그녀는 육신의 아들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마리아는 슬퍼했다.

그러나 그녀는 제 몸에서 낳은 아들이었음에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러기에 어머니로서의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다. 예수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모두 떠났지만 마리아는 죽음을 지켰고 부활을 믿고 기다렸다. 예수를 자신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사랑한 마리아는 진정한 어머니였고, 믿음의 여인이었다.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 마리아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어머니’ 하와는 죄의 근원으로 상징된다. 그녀는 인류의 어머니이면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죄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는 또 다른 여성성의 단면을 드러낸다. 인류를 구원할 예수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을 받아들이고 감사했다는 점에서 ‘인류 구원의 모성’이라 할 만하다.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반역의 여성상이라면 마리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순종의 여성상이다. 아담과 하와로 인해 파탄한 인류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꾼 성경 속 여인들’에 등장하는 여성은 사회적 통념과 고착된 이데올로기를 거역하는, 일탈적인 모습이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 세상을 지배했던 남성의 강력한 힘에 맞서 특유의 여성성으로 새로운 역사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 가운데 마리아의 여성성은 더욱 돋보인다. ‘동정녀의 임신’이라는 사회적 금기를 수용하면서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 것이다. 하와로 인해 짊어지게 된 죄의 사슬을 끊는 또 다른 혁명이 마리아에서부터 시작됐다.

글=현길언 작가 (계간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 서울 충신교회 은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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