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서윤경] 김현종의 당당함이란 기사의 사진
1971년 4월 30일자 라이프지에 마오쩌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그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닉슨 대통령의 제안을 기사로 답한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1970년 10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중국에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중 ‘핑퐁 외교’가 현실화됐다. 시간을 앞당겨 1938년 9월 30일. 영국 헤스턴 공항에 도착한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기자들 앞에서 종이를 꺼내들었다. 영국과 독일의 관계를 개선하고 유럽 평화에 함께 기여하자는 성명서였다. 독일의 히틀러 서명도 보였다. 체임벌린은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1년 뒤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략했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협상의 성패를 가른 건 상대의 신호를 어떻게 감지하고 대처했느냐다. 마오쩌둥과 닉슨은 서로를 향한 긍정적 신호를 읽었고 거대한 전환을 이뤘다. 반면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성과에 급급했던 체임벌린은 굳이 성과가 필요없다는 히틀러의 신호를 읽지 못했다. 이처럼 협상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벌이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라인강 기적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의 경제관료 루드비히 에르하르트가 “케이크를 나눠줄 때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가장 큰 조각을 가졌다고 믿게 하는 기술”이라고 협상을 정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주도하고 10년 만에 돌아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최근 수시로 사용하는 말이 있다. ‘당당함’이다. 지난 22일 한·미 FTA 특별회기 공동위원회 직후 브리핑에선 “당당하게 협상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고, 사흘 뒤 수출점검회의에선 3대 통상전략 중 ‘당당함’을 첫손에 꼽았다.

FTA 개정이나 사드 보복 등에 굴하지 않고 원칙에 입각해 협상하겠다는 신호를 미국과 중국에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신호, 도무지 해석이 어렵다. 일단 이전에 진행한 협상은 ‘굴욕 협상’이라 자인한 꼴이 됐다. 더구나 미국 입장에서 한·미 FTA 협상을 진행했다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당당하게’란 신호는 불편하기만 하다.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2006년 김 본부장은 미국 제약회사에 불리한 내용이 이행되지 않도록 노력 중이란 정보를 미 대사관에 흘렸다. 10년 만에 던진 그의 ‘당당하게’란 신호를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서윤경 차장,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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