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인의를 찾아서-(125)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분변미생물이식센터] 염증성 장 질환 싹∼ 기사의 사진
연세대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분변미생물이식센터 다학제 협진 의료진. 뒷줄 왼쪽부터 감염면역과 안종균, 내분비과 김호성, 소아소화기영양과 고홍(센터장), 진단검사의학과 용동은, 신경과 강훈철, 소아소화기영양과 김승 강윤구 교수. 앞줄 왼쪽부터 진단검사의학과 김연희 조교, 혈액종양과 한승민, 정신과 천근아, 진단검사의학과 변정현, 호흡기알레르기과 김경원 교수, 소아내시경실 송기연(파트장) 권남경 간호사. 서영희 기자
분변미생물이식은 사람의 대변 속 건강한 미생물을 환자의 장 속에 뿌려주는 치료법이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을 중심으로 몇 해 전부터 크게 유행하고 있는 신의료기술이다.

국내에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2016년 첫선을 보였다. 진단검사의학과 용동은 교수팀이 201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난치성 장 질환 중 하나인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환자 치료에 분변미생물이식술을 이용하겠다고 신청해 이듬해 신의료기술 인증을 받았다. 올해 2월에는 어린이병원에 소아청소년분변미생물이식센터(센터장 고홍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를 개설했다. 관련 연구 및 의료서비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의료진은 모두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센터장 고홍 교수를 비롯한 소아소화기영양과 김승 박소원 강윤구 교수팀과 진단검사의학과 용동은 변정현 교수팀, 소아내시경실 송기연 권남경 전문간호사팀, 신경과 김흥동 강훈철 교수팀, 내분비과 김호성 교수, 호흡기알레르기과 손명현 김경원 교수팀, 혈액종양과 유철주 한승민 교수팀, 감염면역과 안종균 교수, 정신과 송동호 천근아 교수팀이 그들이다.

고홍 교수는 28일 “앞으로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균 감염에 의한 ‘위막성대장염’의 극복뿐 아니라 국내외 임상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궤양성대장염 등 난치성 장 질환과 비만 당뇨 자폐증 다발성경화증 등 만성 신경·내분비 및 대사 질환, 정신질환의 치료까지 분변미생물이식술을 확대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 극복

분변미생물이식술의 목표는 한 가지다. 균형을 잃은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을 정상화시켜 건강을 되찾아주는 것이다.

이식용 미생물은 건강한 일반인이 기증한 대변을 비슷한 양의 생리식염수에 풀어 고형물을 걸러내는 방법으로 얻는다. 보통 건강한 사람 한 명이 기증하는 대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장내 미생물 포함 용액은 240㏄ 정도다.

치료를 위해선 먼저 관장으로 장속을 비워야 한다. 이어 위·대장내시경으로 앞서 걸러둔 기증자의 장내 미생물 용액을 환자의 몸속에 5∼10분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이식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내시경 대신 속칭 ‘콧줄’로 불리는 코·십이지장관을 사용할 때도 있다.

인체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10조개 이상 존재하는데, 70% 이상이 장내에 기생하고 있다. 이들 미생물의 균형이 깨지면 장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원인 모를 염증이 생겨 잘 낫지 않고 수시로 배탈을 일으킨다. 발병 시 치료가 힘들고 재발도 잦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이 대표적이다.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은 건강한 사람의 장에도 소량 기생하는 균이다. 하지만 항생제 남용 시 갑자기 개체수가 증가하고 이 균이 내뿜는 독소도 많아져 중증 장염을 일으킨다. 설사와 발열, 점액성 대변과 혈변, 복통과 오심(메스꺼움), 구토, 복부팽만감, 오한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된다.

더 큰 문제는 약물로 치료할 경우 곧 내성이 생겨 재발률이 35%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항생제 내성균을 잡는 슈퍼 항생제를 쓰기도 쉽지 않다. 잦은 재발은 장천공, 쇼크, 독성거대결장 등 치명적 합병증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어서다.

분변미생물이식 치료는 이 같은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항생제 내성 및 재발 위험 때문에 특정 항생제를 맘껏 쓰지 못할 때 효과적인 대안 수단으로 꼽힌다.

분변미생물이식술 연구 활기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장염에 대한 분변미생물이식술의 효과는 약 92%로 추정된다. 관련 논문 303편을 비교 분석한 연구결과다. 영국의 한 학술지가 지난 7월 이를 공개했다.

고 교수는 “위내시경을 이용한 분변미생물이식술의 경우 단 1회 시술만으로도 약 95%, 대장내시경을 이용한 경우엔 약 88%의 성공률을 각각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분변미생물이식술로 치료 가능한 질환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소화기 분야에서는 과민성대장증후군(IBS)이 주요 타깃이다. 분변미생물이식 치료를 받은 IBS환자 10명 중 3.6명이 완치, 1.6명이 호전되는 효과를 봤다는 보고가 있다.

소화기 분야 국제 학술지 ‘가스트로엔테롤로지 & 헤파톨로지’는 최근호에 크론병(궤양성대장염) 환자 122명을 대상으로 분변미생물이식 치료를 시도한 결과 45%가 관해(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연구결과를 실었다.

대사증후군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 증가 및 균형 회복으로 당뇨 환자의 인슐린 저항성이 감소되고 비타민 생성과 칼슘 마그네슘 철분 흡수를 촉진하는 짧은 사슬 지방산(SCFAs)이 증가하는 것으로 관찰됐다는 보고가 그 중 한 사례다.

항생제내성균주 감염증도 치료

고 교수팀 역시 요즘 분변미생물이식술 확대시술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조혈모세포이식 후 이식편대숙주거부반응(GVHD) VRE(반코마이신내성균) CRE(카바페넴내성균) 등 항생제내성균주 보유 감염증의 치료에 분변미생물이식술을 적용하는 방도를 적극 찾고 있다.

소아청소년기에 염증성 장 질환을 갖게 되면 각종 약물에 수십년간 노출돼 만신창이가 되기 쉽다. 장기간 약물치료에 따른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분변미생물이식 치료는 이런 위험을 소아청소년기부터 일찌감치 몰아내주는 효과가 기대된다. 인체 유래 동종 미생물이라 부작용 위험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고 교수는 “많은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 균형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분변미생물이식 치료 확대와 더불어 고질적인 염증성 장 질환은 물론 자폐증 당뇨 크론병 등 난치병 없는 세상이 앞당겨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