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젠트리 보고서] 세 든 자영업자의 꿈은 ‘10년 장사’다… 곳곳서 쫓겨나는 가게들 기사의 사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에 주력하고 있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있는 임차상인들의 단체인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맘상모 창립 멤버로 당인리발전소 근처에서 카페 ‘그문화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남균씨.김지훈 기자
서울 북촌에서 작은 공방을 운영하던 김유하씨와 그 옆에서 옷가게를 하던 김영리씨는 장사를 하는 지난 6∼7년 동안 건물주가 세 차례나 바뀌었고 지난해 강제집행을 당해 쫓겨났다. 두 사람은 쫓겨난 가게 앞에서 새 건물주인 삼청새마을금고를 상대로 1년 넘게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인사동의 5평짜리 와플가게 ‘림벅와플’도 상가임대차 분쟁 현장이다. 가게 입구에는 ‘영업 중’과 함께 ‘투쟁기간 중 전 메뉴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2010년 장사를 시작해 인사동 맛집으로 꽤 알려졌지만 지난해 건물주와의 명도소송에서 패해 강제집행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가게들이 쫓겨나고 있다.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책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에서 “허름한 동네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들어서면, 3∼4년 뒤에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오고, 다시 3∼4년이 지나면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이 들어온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기본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과정이 이제 서울에서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법칙으로 굳어져버린 듯 하다”고 썼다.

얼마나 많은 가게들이 쫓겨나고 있는 것일까?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 해 약 3만3000여건의 명도 및 강제집행 소송이 이뤄진다. 상가와 주거 임대차계약을 합친 숫자다. 명도소송이란 세입자가 건물을 비워주지 않는 경우, 건물주가 제기하는 소송으로 승소하면 강제집행에 들어간다.

마포구 당인리발전소 인근에서 ‘그문화다방’을 운영하는 김남균씨는 “소송에 의해 쫓겨나는 사람보다 그냥 알아서 나가는 사람이 20배 이상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주변을 보면 알아서 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세를 든 사람들은 내용증명 한 장만 와도 벌벌 떤다. 웬만한 상인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난다.”

그문화다방 근처에는 상수동카페거리의 터주대감으로 불리는 ‘이리카페’가 있다. 이리카페는 간판에 ‘이리카페 2004’라고 써놓았다. 2004년부터 카페를 시작했다는 것이니까 이제 10년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김씨는 “홍대에서 10년 이상 버티는 가게가 극히 드물다”면서 “카페로만 보자면 10년 이상 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건물을 빌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10년 장사’는 꿈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보장되는 계약 기간은 5년. 그러나 실제로는 5년도 맘 편히 장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씨는 “상권 좋은 데는 2, 3년 가게를 하기도 어렵다. 핫플레이스의 경우엔 6개월도 영업 못하고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젠트리 구청장’으로 유명한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서울의 경우 임대보증금에 월 임대료 100배를 더한 ‘환산보증금’이 4억원 이하인 경우만 5년간 상가임대차 계약이 보호되는데, 이 기준대로하면 서울의 전체 상가임대차계약 중 30∼40%가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이어 “서울시내 잘 나가는 5대 상권의 환산보증금은 평균 8억원에 이른다”며 “임대차보호법이 현재 젠트리 문제가 심각한 ‘뜨는’ 상권에서는 아무런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래된 가게가 임대료 문제로 쫓겨나는 것은 행정력으로도 막기 어렵다. 서울시는 마포구 성산동 주민들의 사랑방이었던 ‘작은나무’ 카페나 신촌의 오래된 헌책방인 ‘공씨책방’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달 작은나무는 주민들의 눈물 속에서 문을 닫았고, 공씨책방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으나 건물주와의 소송을 피하지 못했다.

김씨는 “서울에서 장사를 하는 일은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장사할 자리를 지키는 게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장사란 게 사실 관계를 파는 것이다. 카페를 열고 7∼8년쯤 되니까 이제 좀 자리를 잡는다는 느낌이 생겼다. 단골들이 생겼고 그분들이 친구들도 데려온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장사가 원래 이런 것이다. 처음부터 흑자를 보는 데가 어디 있나?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5년 안에 돈을 벌기는 어렵다. 10년 이상은 장사를 할 수 있어야 된다.”

정 구청장도 “장사가 안 되면 생계 걱정, 잘 되면 쫓겨날까봐 걱정하는 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모습”이라며 “최소 10년은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서울에도 50년, 100년 된 가게들이 생겨난다”고 강조했다.

글=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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