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청사초롱

[청사초롱-이나미] 유해물질 공포 처방전

[청사초롱-이나미] 유해물질 공포 처방전 기사의 사진
삼십년 전 아이들 키울 때 헝겊 기저귀를 쓰느라 매일 퇴근하면 기저귀 빨래로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 약한 피부 보호하고 돈도 아끼느라 그랬지만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 때만 해도 쓰레기 종량제가 없어 수도세가 더 나온다고 툴툴 거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도 환경과 건강을 위해 아이 기저귀나 생리대까지 헝겊을 쓰는 여성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안팎으로 할 일 많은 경쟁사회에서 무서운 시어머니도 없는데 그런 선택을 한다니 대단하다. 실은 남자와 전쟁을 위한 과학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빠르지만 여성과 아이의 몸과 환경을 배려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느린 게 더 근본적인 문제다. 환경에 관심을 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너무 미미했다.

빌딩은 꽃, 채소, 닭이나 토끼를 품을 수 있는 건강한 공간 대신 경쟁적으로 ‘더 높이 더 화려하게’만 추구했다. 햇빛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베란다와 대청마루 닮은 거실이 있다면 전기도 아끼고 안전한 채소도 키워 먹을 수도 있을 터인데 외양만 그럴 듯한 덥고 추운 통창만 달았다. 가로수 옆 공간에서 주민들이 직접 먹을 채소나 허브를 키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왕에 심은 은행나무마저 냄새난다고 나무에 거세 시술을 하려고 한다. 저녁에 일찍 집에 돌아가 채소나 동물을 키우고 돌볼 수 있다면 술에 찌들어 각종 질병이나 사고로 죽는 대신 가족끼리 더 행복할 터인데 작은 텃밭 가꿀 공간도 없다.

심심해서 아파트 밖을 쳐다보다가 사냥감이라며 어린 아이를 죽이는 이, 어린 소녀를 유인해서 성매매를 시키는 이, 짜증난다고 묻지마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황폐한 정신에는 꽃과 채소와 짐승을 정성들여 가꾸는 ‘돌봄의 정신’이 예방과 치유의 처방이 아닐까 싶다. 몸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주변 환경에 대한 배려와 애정으로 확장된다면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에 보다 근접해 보인다.

사스나 랭 같은 정신의학자들은 도시화가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웃에 관심도 없고, 자연과 유리된 주거공간에서 경쟁에만 몰두하면 성격장애, 피해망상 같은 심각한 정신병도 당연히 증가할 것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관련 여러 질병이 다양하게 연구된다. 병의 요인은 복잡하기에 단순화할 수 없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건강한 일반인이 휴가 때면 자연 속의 좋은 음식과 숙박시설을 찾는 것은 생태의학적 관점에서 옳은 선택이다. 하지만 일하는 이에게 휴가는 너무 짧고 치유의 공간은 너무 좁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공간보다는 속도와 물량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리라.

각종 오염 물질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나와 가족의 건강을 지킬까 노심초사 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당연한 걱정이다. 하지만 나라가 병들고 지구 전체가 오염된다면 내 주변만 건강하게 살 방도는 없다. 첩첩산중이라도 플라스틱 그릇과 세제를 쓰고, 비닐 쓰레기를 방출하고, 미세먼지와 황사가 이 땅 전체를 덮고 있다면, 유해한 오염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류 최악의 발명품은 엄청난 공해를 배출하는 자동차, 썩지 않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아닐까 싶다. 편리하고 유용한 발명품의 역습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AI)이나 로봇·컴퓨터·휴대전화·자동차 폐기물, 드론부터 인공위성까지 하늘을 오염시키는 것, 온난화로 하루에도 몇 m씩 녹아내리는 빙하,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해수면에 사라지는 섬과 항구까지. 환경오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구적 변화에는 무관심하고 개인의 건강만 추구한다면 근본적인 해법에서는 더 멀어진다. 나만 오래 잘 살면 된다는 마음과 끝없이 진보가 가능하다는 순진한 진화론 대신 지구가 우리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멸종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 게 치유의 시작이다. 암세포는 숙주가 죽든 말든 관심이 없지만 인류는 지구를 계속 오염시키다가 결국 자신이 먼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능력이 있는 존재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