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성 범죄, 이제는 배려와 고민이 필요한 때 기사의 사진
연쇄살인범에 의한 여성 살해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은 ‘브이아이피’(왼쪽 사진)와 불법 난자 매매라는 신종 범죄를 다룬 ‘청년경찰’의 극 중 장면. 각 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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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서 ‘범죄’는 빠질 수 없는 극적 설정이다. 사건의 중심인 형사나 범인은 대부분 남성, 물리적 약자인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전형성도 거의 매번 유지된다. 하지만 소재가 고갈되고 범죄 표현의 수위는 높아지면서, 작품 속 여성에 대한 착취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거센 비판에 직면한 작품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 중인 ‘브이아이피’다. ‘악마를 보았다’(2010) 각본을 쓰고 ‘신세계’(2013)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 한국 국가정보원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합작해 기획 귀순시킨 북한 고위층 자제 광일(이종석)이 연쇄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의 이 영화는 잔혹한 범죄 상황을 적나라하게 재연한다.

특히 초반부 장면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길 가던 소녀가 납치돼 알몸으로 강간 고문 교살당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려움에 휩싸인 소녀의 얼굴과 발가벗겨진 상반신이 스크린 가득 비춰질 때 그 고통은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이되고 만다.

실제로 불쾌감을 토로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다. “영화를 관람하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상영관을 빠져나왔다”는 혹평이 잇달아 SNS에 게재됐다. “‘브이아이피’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전부 범죄 피해자이거나 시체”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박 감독은 “해당 장면 편집 여부를 고민했으나 광일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이어서 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불편해하실 거라 예상은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성에 대한 나의 이해가 무지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며 “관객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 선택에 따른 결과는 감수하겠다”고 전했다.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청년경찰’(감독 김주환)도 여성 캐릭터와 범죄 묘사 방식에 있어 부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박서준·강하늘이 연기한 두 경찰대생이 사회 정의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려 여성 캐릭터를 기능적으로 사용했고, 이 과정에서 여성 납치와 불법 난자 매매 등 강력 범죄를 깊은 고민 없이 다뤘다는 것이다.

김주환 감독은 “두 주인공에게 ‘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일들이 있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지점이 필요했다”며 “여성을 비하했다는 식의 오해와 편견은 없었으면 한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한층 노골적으로 여성 범죄를 전면에 내세운 경우도 있다. 당초 8월 개봉 예정이었던 ‘토일렛’(감독 이상훈)은 지난해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져 뭇매를 맞았다. 이에 제작사와 홍보사, 감독은 “홍보 상의 실수였을 뿐 강남역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영화다.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여성 범죄가 장르적으로 소비된 게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비판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전반적인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다”면서 “대중영화를 만드는 연출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고민과 지향점이 녹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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