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인건비 3조·일자리 2만개 ‘쩐의 전쟁’… 기아차 통상임금 오늘 결판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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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당시 댄 에커슨 GM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80억 달러 투자 전제조건으로 엔저와 함께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거론했다. 대법원이 관련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삼권분립을 무시한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통상임금을 둘러싼 경영계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그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갑을오토텍 노조가 제기한 임금 및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개념 및 요건을 제시했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고, 소송도 늘었다. 통상임금 문제의 근본적 해결 노력 없이 법원만 바라보는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31일에는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7220억원 규모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가 내려진다. 결과에 따라 자동차업계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경영계 시한폭탄 된 통상임금 소송

통상임금 논란이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2년 3월 대법원이 ‘금아리무진 사건’에서 분기별로 지급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부터다. 1996년 의료보험조합 사건 판결 이후 법원이 통상임금을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고정적 임금’으로 보는 경향이 뚜렷해졌으나 분기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초과근로 수당, 연차휴가 수당, 퇴직금 등의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달라지자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본 노조의 소송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이듬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것도 소송 승리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고용노동부가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지난 6월까지 100인 이상 사업장 1만여곳 중 192곳에서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중이거나 완료됐다.

반면 소송 증가에 따른 경영계 우려는 깊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0일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25개 기업을 대상으로 패소 시 부담해야 할 금액을 조사한 결과 8조3673억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들 기업의 지난해 전체 인건비의 36.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31일 1심이 선고되는 기아차 역시 패소할 경우 최대 3조원의 인건비 부담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소송에 따른 소급분 1조8000억원에 통상임금으로 연동되는 퇴직금 등 증가분까지 합치면 모두 3조원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1심 선고 뒤 당장 지급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판결 시점부터 회계에 이를 반영해야 해 영업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기아차 지분을 가진 현대차 역시 지분법에 따라 손실을 떠안게 되고 협력사 등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큰 상황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기아차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라 완성차·부품사 업계 전체 기준 2만3000개 이상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신의칙 인정 여부가 쟁점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재판 쟁점은 정기상여금의 고정성을 둘러싼 것도 있지만 대부분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모아지고 있다. 2013년 판결 당시 정기상여금 등 수당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만족할 경우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했지만 신의칙 적용 여부에 따라 추가임금 지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을 관행으로 정착시킨 상황에서 기업에 예상치 못한 과도한 손실을 끼칠 경우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며 추가임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제는 하급심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지난 18일 통상임금 항소심 판결이 난 금호타이어의 경우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회사의 신의칙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1심은 회사가 워크아웃 종료 시 그간 미지급한 상여금 등을 지급해야 하는 사정만으로 경영상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통상임금 산입에 따른 추가임금을 지급할 경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판결했다.

금호타이어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경우도 1심과 2심의 신의칙 관련 판단이 달라진 경우다. 대법원이 2013년 신의칙 기준을 나름 제시했지만 해석의 여지가 커 같은 사건이라도 1, 2심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2015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시영운수 사건의 결론이 신속히 내려져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 중 두 번째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시영운수 사건은 신의칙 적용 기준 등을 보다 명확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판례에만 기대는 관행 줄여야

향후 통상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진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먼저 통상임금에 대한 법률 및 행정 해석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임금 관련 정의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시행령에 기술돼 있지만 근로기준법의 위임 없이 돼있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행정지침이 법원 판단과 달라 현장에서 혼선을 키운 이유이기도 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통상임금 범위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긴 했지만 법 규정을 보다 명문화해야 추가적인 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임금체계 변경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영계의 경우 성과나 직무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우선 임금 체계를 단순화해 분란의 소지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노동계 역시 초과근로와 연차 미사용 등 노동시간이 길어진 배경에 낮은 기본급이 놓여있는 만큼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노·사·정 협의 채널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 등을 꾸준히 논의해 법원 판결에만 기대는 관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2015년 9월 15일 통상임금 명확화를 포함한 대타협을 겨우 이뤘지만 4개월여 만에 파기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임금 문제는 판례에만 맡겨놓다 보니 정리가 안 되는 측면이 있다”며 “노·사·정이 합의할 경우 국회 입법도 수월하고 정치권 역시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당사자 간에 합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글=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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