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진정한 의사의 길은?… 자문하는 초보 의사 기사의 사진
‘병원의 사생활’에는 저자의 그림 수십 장이 담겨 있다. 병원의 26개 과(科) 가운데 고되기로 유명한 신경외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밟으며 틈틈이 노트에 그린 그림들이다. 저자는 “매주 그림을 그리고 글 쓴다는 게 쉽진 않지만, 그럼에도 일상이 그림으로 연결될 때 낙이 생긴다”고 말했다. 글항아리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꼽자면 이런 대목이었다. 저자는 신경외과 전공의 과정(레지던트) 4년차인 서른두 살의 의사인데, 환자가 누워있는 이동침대를 밀며 수술실로 향할 때면 환자의 손을 꼭 잡는다고 했다. 환자가 느낄 두려움이나 긴장감을 잘 알고 있어서다.

“침대를 끌고 수술방에 들어갈 때면 항상 환자의 손을 잡아줬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할머니이거나 총각이거나 모두 스스럼없이 손을 꼭 잡는다.”

의술이 인술(仁術)이 되는 순간을 꼽자면 바로 이런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 책은 이처럼 환자를 살뜰하게 챙기면서 무엇이 의사의 길인지 거듭 자문하는 초보 의사의 에세이다.

책은 크게 1, 2부로 구성됐다. 1부 ‘벌거벗은 자와 살아남은 자’에서는 병원에서 마주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2부 ‘신경외과, 극한의 직업’엔 의사로 살면서 느낀 삶의 단상이 담겼다. 틈틈이 노트에 그려나간, 비범한 실력이 느껴지는 그림들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수술실의 온도가 왜 낮은지, 의사들이 뇌수술을 앞둔 환자의 머리를 미는 ‘삭도(削刀)’를 할 때 어떤 심경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제목처럼 ‘병원의 사생활’이 담긴 셈이다.

사무적이면서 얼마간 차갑게 느껴지는 의사를 마주한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이 반가울 듯하다. 적어도 저자는 그런 의사는 아닌 것처럼 느껴지니까. 예컨대 이런 일화가 대표적이다.

인턴 시절 저자는 응급실에서 어레스트(Arrest·심정지)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처음 마주했다. 오른손 손바닥으로 왼쪽 손등을 깍지 끼듯이 잡고 환자의 가슴을 수차례 압박했다. 하지만 30분 넘는 심폐소생술에도 환자는 끝내 숨을 거뒀다. 허탈한 마음에 그는 편의점에 들러 한 봉지에 초콜릿 3개가 들어있는 것을 샀다. 벤치에 앉아 하나는 먹고, 하나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었다. 나머지 하나는 방에 있던 커다란 병에 집어넣었다. 고인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말이다.

“초콜릿 하나하나에 내 손안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은 사람들의 얼굴을 새겼다. ‘오랜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길 빌게요.’ …다신 환자를 못 만나게 될 때마다 난 땀이 흐르는 몸뚱이와 처진 마음을 부여잡고 편의점에 들러 초콜릿을 산 뒤 하나는 먹고, 하나는 주고, 하나는 담았다. 그렇게 큰 병 두 개가 가득 찰 무렵 나는 인턴생활을 마쳤다.”

의사는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지면 의무적으로 한국장기기증원에 보고하고, 보호자를 상대로 장기기증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 저자는 환자의 죽음을 목도하는 건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적은 뒤 장기기증의 의미를 풀어놓으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삶의 끝 그리고 죽음 뒤에 이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사후 세계가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나는 많이 봐왔다. 성심껏 치료한 의사라면 장기기증을 설명하는 것에도 당당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의사는 그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내용처럼 인간의 삶을 ‘생로사(生老死)’가 아닌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요약하는 건 “병이 삶의 한 흐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면 눈앞에 있는 전공의가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한 번 떠올려보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환자를 살리는 데 의술이 전부일 순 없다. 훗날 로봇이 수술을 대신하더라도 ‘사람’ 의사는 필요할 것이다. 환자에게는 격려를 전하면서 손을 꼭 잡아주는 의사의 손길이 절실한 법이니까 말이다. ‘병원의 사생활’은 이토록 평범한 진실을 환기시키는 귀한 에세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