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참호 속에서 묻다… 신은 존재하는가

전쟁소설 '순교자' 김은국 모교 목포고와 역사관

[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참호 속에서 묻다… 신은 존재하는가 기사의 사진
6·25전쟁 중에도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군인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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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한 이들이 수없이 죽었다. 그 전선의 참호와 벙커 속에서 '우리에게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란 질문을 하며 괴로워했던 한 육군 장교가 있었다. 그는 10여년 후 6·25전쟁을 배경으로 '신앙과 실존'의 주제를 풀어 작품을 썼다.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김은국(1932∼2009)의 첫 장편소설 '순교자(The Martyred)'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소설가 김은국은 1964년 미국에서 먼저 '순교자'를 발표해 미국 언론과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도스토옙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도덕적이며 심리적인 전통을 훌륭하게 이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순교자'는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세계 10여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국내에서도 영화 연극 오페라 등으로 만들어져 관심을 모았다. 어떤 점이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일까. 불의와 절망, 수난과 죽음은 인간의 보편적인 고통이다. 소설은 '이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통을 이겨내는 정의가 있는가' '그 비참한 운명 앞에서 무력한 인간은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예향의 도시 목포

전남 목포는 문학과 예술의 도시다. 이 도시가 낳은 예술가들을 언급할 때마다 소설가 박화성과 극작가 김우진 차범석 천승세, 시인 김지하, 평론가 김현, 소설가 최인훈과 김은국을 빼놓지 않는다. 김은국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그가 48∼50년 재학한 목포고등학교(구 목포중학교)를 최근 찾았다. 학교 학적부를 통해 작가가 당시 용당리(현 용당동) 846번지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학교 내 역사관에서 김은국이 당시 6년제였던 목포중학교 제4회(1950년) 졸업생인 것을 확인했다.

목포고등학교 10회 졸업생인 박준상 시인이 김은국이 살던 용당동까지 동행해 줬다. 마을에 들어서자 박 시인은 소설가 박화성이 37∼62년 거처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집터에 세워진 세한루(歲寒樓)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췄다.

박 시인은 “이 일대가 당시 박화성 선생의 남편이 운영하던 비단공장이 운집해 있었다”고 회상하며 “조용한 성품의 김은국이 이북에서 가족과 함께 내려와 이 마을에 정착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은국은 박화성의 집필실 인근에 살면서 박화성의 문학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안다”며 “이 마을에서 당시 대성동에 있던 목포중학교를 다녔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국은 1950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 목포를 떠났다.

신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

소설 ‘순교자’는 해방 후 이 땅에 벌어졌던 아픈 ‘전쟁의 기억’ 속으로 독자들을 빠르고 깊게 끌고 간다. 6·25전쟁 발발 직전 북한의 목회자 14명이 인민군에 체포된다. 이 중 12명이 처형되고 2명만 살아남는다. 충격으로 정신 이상자가 된 한 목사와 다른 또 한 사람의 목회자 신 목사. 사건의 정황을 아는 신 목사는 자신이 살아남은 일은 ‘신의 개입’이라고 말할 뿐 침묵을 지킨다. 냉정한 관찰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이 대위는 장 대령의 명령으로 사건의 진상조사를 한다. 신도들은 순교한 12명의 목사를 애도하고 멀쩡하게 살아남은 신 목사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얼마 후 생포된 북한군 정 소좌에 의해 진실이 폭로된다. 지금까지 위대한 순교자로 알려졌던 12명의 목사는 배교했지만, 신 목사는 용기 있게 대항한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살려줬다고 했다. 그러나 신 목사는 12명의 목사가 위대한 순교자임을 믿고 거기에 힘을 얻고 살아가는 신도들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자신은 유다와 같이 그들을 배반해 살게 됐노라고 거짓고백을 한다. 장 대령 역시 정치적인 입장에서 12명 목사를 위대한 순교자로 미화해 이용하려 한다. 신 목사는 사람들의 비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 아니라 후퇴하는 유엔군을 따라가지 않고 평양에 남았다가 실종된다. ‘순교자’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소설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실존의 문제와 신을 향한 절대적 구원의 메시지를 정면에서 다룬다. 신 목사는 신의 섭리를 간절히 간구하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날 좀 도와주시오. 불쌍한 내 교인들,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그리고 삶의 피곤에 시달리는 이들을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오. 고난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 그들을 절망의 바다로 떠내려 보내고 있소. …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소설 ‘순교자’ 중에서)

이런 신 목사의 절규에 이 대위는 “당신의 신은 그의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알고 있는가? 아무 관심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당신은 사람들을 속이는가?”라고 물으며 스스로도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알베르 카뮈에게 헌사

작가는 알베르 카뮈에게 작품의 헌사를 했다. “‘이상한 형태의 사랑’에 대한 그의 통찰이 나로 하여금 한국 전선의 참호와 벙커에서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줬다. 알베르 카뮈에게.”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고스란히 경험한 그가 신앙을 갈망하면서 느끼는 의혹과 고뇌는 인간의 보편적인 고뇌였다.

소설 속 신 목사는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에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 계시다면 우리 민족의 비참한 상황을 방관하고 계실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결국 신 목사는 고통당하는 신도들에게 환상을 심어 현실의 고통과 좌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회자인 자신의 역할이라는 새로운 신앙을 정립한다. 자신이 구해야 할 이들은 고통당하는 인간이며 그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결심이다. 그가 말한 ‘이상한 형태의 사랑’이다.

이 소설의 모티브는 외조부 이학봉 목사였다. 북한 공산당의 핍박에 저항했던 외조부는 6·25전쟁 직전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된 후 1950년 10월 18일 저녁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다. 김은국은 할아버지가 장로교회 목사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1980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김찬도다. 작가는 황해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가족 전체가 1947년 남한으로 내려왔다. 가족은 남쪽 멀리 목포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목포고등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60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여성 페닐로우프 앤 그롤과 결혼했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1962년에는 아이오와대학교의 작가 워크숍에서 창작 석사학위(MFA)를 받았다. 소설 ‘순교자’는 아이오와대학교의 작가워크숍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이외의 작품으로 5·16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한 ‘심판자’, 일제강점기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잃어버린 이름’ 등이 있다. 1981년부터 2년간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강의했다. 2009년 6월 23일 매사추세츠의 자택에서 암 투병 중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전 인생 중 한국에 머문 시간보다 미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지만 그의 작품은 한국역사의 아픔과 함께했다.

김은국에게 작가적 토양을 심어준 목포의 구(舊)도심은 세월을 담아낸 터전들이 남아있다. 유달산 인근엔 역사의 아픔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목포근대역사관 2관(옛 동양척식주식회사)이 있고 부근은 지금도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있다. 역사관에서 나와 유달산을 향해 서면 언덕길 옆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 눈에 들어온다. 옛 일본영사관 건물이다. 60여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났던 아픈 역사 이야기를 떠올리며 시가지를 걸었다. 지척에서 항구의 바람이 불어왔다.

■[김은국처럼 생각하기]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 인간은 고난 못이겨"



소설가 김은국(사진)은 6·25전쟁 발발 후 군대에 입대해 통역장교로 5년 가까이 복무했다. 전쟁의 공포와 참상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목사님의 신이건 그 어떤 신이건 세상의 모든 신은 대체 우리에게 무슨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의 신은 우리의 고난을 이해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의 비참, 살육, 굶주린 백성들, 그 많은 전쟁 그리고 그 밖의 끔찍한 일들과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 거짓말에 거짓말의 연속 아닙니까? 열두 명의 목사는 모두 이유 없이 도륙당했습니다. 그들은 신의 영광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당신의 신은 그렇게 무관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판국에 당신께선 신을 찬미하다니요."

삶을 뒤흔든 이 대위의 질문에 대해 작가는 신 목사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 희망을 잃을 때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 약속을 잃었을 때 어떻게 야만이 되는지를 거기서 보았소. … 희망 없이는, 그리고 정의에 대한 약속 없이 인간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 희망과 약속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데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를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그는 고난 속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앙이라면 그것은 죽은 신앙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작가가 전 인생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목포=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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