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신상목] 기독교는 억울하다? 기사의 사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창조과학 논란은 매우 유감스럽다. 창조과학회가 느닷없이 극단주의나 유사과학을 신봉하는 이단 집단으로 매도됐기 때문이다. 창조과학회는 ‘젊은지구론’을 지지한다. 지구 연대가 창조 후 6000년 정도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원 모두 이를 찬성하는 건 아니다. 젊은지구론이 창조과학회의 주된 지향점도 아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창조과학회 이사이기에 공직자로서 결격 사유가 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자라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다. 전 세계 기독교인 대부분이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창조과학회 소속 회원들도 이런 창조신앙에 동의한다.

인류 역사 최초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지휘해 2003년 31억개의 유전자 서열을 밝힌 미국 유전학 권위자인 프랜시스 콜린스는 저서 ‘신의 언어’에 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창조론을 지지하나 젊은지구론은 배격한다. 그렇다면 콜린스 박사도 유사과학을 신봉하는 극단주의자인가. 창조과학회를 마치 사교 집단처럼 여기는 행태는 일반화의 심각한 비약으로 보인다.

다만 창조과학회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가를 생각할 때 교계를 관찰해온 일개 기자로서 안타까운 부분이 없지 않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창조과학회는 이렇다 할 입장이나 적극적 변호를 하지 않았다. 지난 28일 ‘오해와 진실’이란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했을 뿐이다. 그동안 창조과학회는 논란이 돼온 지구 연대와 관련해 적극적인 토론이 부재했다. 의견이 다르면 ‘유신진화론’이란 이름으로 비판했다. 제3자의 눈으로는 크리스천 과학자끼리의 갈등으로만 보였다. 박 후보자와 관련돼 논란을 키운 것은 어쩌면 창조과학회의 이런 태도에 일정 부분 기인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기독교계는 좀 억울하다. 종교인 과세도 그렇다. 기독교는 종교인 과세를 무조건 반대하는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이 문제는 기독교계 안에서도 찬반이 팽팽하다. 과세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상세한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의 법안이 ‘종교인’ 과세인지 ‘종교’ 과세인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종교인 과세는 목사에게 해당되며 종교 과세는 교회에 세금을 부과한다. 그런데 교회는 비영리단체에 속한다. 만약 종교 과세를 실시하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따라서 과세 당국은 각 종교나 종단 등과 협의해 종교인 소득에 포함되는 종교단체별로 다양한 소득원천과 비용 인정 범위, 징수 방법에 대해 상세한 과세 기준을 협의·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기독교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트집 잡는 교회, 반대하는 신자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최근 동성애 합법화 등에 반대하면서 반감이 더욱 거세졌을 수도 있다. 반대운동에 세련됨도 필요해 보인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혹시 뿌린 대로 거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더 억울해할 수도 있다. 교회가 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느냐고, 근·현대 역사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사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풍경도 겹친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청년들에게 무조건 믿으라는 교회, 신자를 교회 성장의 도구로 또는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 목회자들, 자신들이 크리스텐돔(기독교제국)에 사는 양 기독교를 이용해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들, 믿음과 행동이 다른 신자들…. 지금의 억울함은 신행(信行) 불일치가 부메랑이 된 것은 아닐까.

기독교를 향한 비난은 더 거세질 수 있다. 가정이지만 예수 부활을 믿는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 마치 1세기 기독교인들처럼, 오늘날 핍박받는 교회들처럼 말이다. 억울하다며 한숨만 쉴 일이 아니다. 나를 돌아볼 때다. 서울 강변교회 김명혁 원로목사는 수년 전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 단어로 요약한 바 있다. 착함, 약함, 주변성이다. 지금 기독교가 겪는 이 애매한 고난은 어쩌면 교회와 기독교인이 있어야 할 원래 자리로 인도하는 섭리인지도 모른다.

신상목 종교부 차장 smsh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