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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공동체를 통해 일하심

에베소서 4장 3∼4절

[오늘의 설교] 공동체를 통해 일하심 기사의 사진
복음은 팔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구원의 길을 먼저 걸으며 그 길로 초청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실 때 전도가 가능합니다. 전도자는 성령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수치와 고난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십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오래전부터 교회의 위기라고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이 땅의 희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기계에 비유해 고장 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생명력이 있기에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아픈 것입니다. 부품을 갈아 끼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울어줄 때 회복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어깨띠를 두르고 전도지를 나눠 주는 것만 전도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복음 전파와 관련이 있습니다. 경로대학, 문화교실 등 교회 문턱을 낮추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곳에서 봉사하는 모든 이들이 곧 전도자입니다. 주일에 주차 안내를 하거나 교회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이들도 곧 전도자입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적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 나눔이 복음 전파의 행위가 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문제는 언제 발생합니까. 내가 하는 일은 중요하고 상대방의 일은 하찮아 보인다는 생각이 만연할 때 교회가 아프게 됩니다. 고린도교회를 보십시오. 바울이 세운 고린도교회는 각종 은사가 넘쳐 나는 곳이었습니다. 가르침이 풍성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아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여러 그룹이 자신들의 은사를 자랑하고 상대를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주인이라 말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아볼로를 따르는 이들은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결정이 옳고 그들이 제안한 전도 방법이 새 시대에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지나치면 이어받아야 할 전통을 무시하게 됩니다.

베드로를 따르는 이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했습니다. 바울이 직접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과 3년간 동행한 베드로를 위시해 바울을 무시했습니다. 마지막 그룹은 그리스도파였습니다. 자신들만이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한다고 주장한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특히 13장에서는 사랑을 강조하며 사랑이 없다면 그 많은 은사와 은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복음 전파는 사랑을 전하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인사하고 칭찬하고 배려하는 것을 통해 전도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성도 한 명 한 명이 교회입니다. 아파하는 성도가 있다면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낮아지고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이 한 몸이 돼 사역하는 교회가 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갈 수 있습니다.

한명준 평택 서정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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