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그들이 버는 세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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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사건팀이었던 하루는 종일토록 고물상에 서 있었다. 손수레를 끌 힘이 없는지 작은 유모차에 폐지더미를 싣고 들어서는 할머니가 있었다. 졸린 표정의 고물상 주인은 유모차를 바닥저울 위에 올리지도 않았다. 얼마 후 그 할머니가 다시 유모차를 밀고 나타났다. 이번엔 드디어 100원짜리 몇 개가 오갔는데, 할머니가 날 보더니 “총각 아직 서 있네” 했다. 할머니는 동전 하나를 고물상 자판기에 넣고 종이컵 커피를 뽑아서 내게 건넸다. 말리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언젠가는 한 노숙자 가족을 찾아갔다. 건물 관리인이 애써 묵인하는 가운데 옥상 통로에 이불을 깔고 밤을 지내는 이들이었다. 내쫓기지 않을 요량으로 가는 길에 아이들을 겨냥해 치킨을 샀다. 머뭇거리는 어머니를 설득해 대화를 나누고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먹을 것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침만 삼키고 있었다. 어머니가 “먹어” 하자 아이들이 먹었다. 기사에는 모금 계좌번호가 달렸다. 내게 괜찮게 쓴 2만원이 있다면 그날 밤 치른 치킨 값이다. 돈이 기사를 만들었다가, 신문이 돈을 모으다가, 그 신문지가 동전으로 변했다.

사건팀의 돈은 그렇게 만져지는 것이었는데, 경제부의 돈은 퍽 관념적이었다. 양도성예금증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CD 금리가 난리라는 기사를 적었다. 한국은행 총재의 넥타이 색깔로 사람들의 소득과 대출을 말했고, 포에니전쟁 때 진군 경로 같은 화살표 몇 개를 그려두곤 주식을 사라 마라 떠들었다. 밤이면 은행 사람들과 “현금수송 직원이 1억원 돈자루를 겨우 옮기는데, 자기 돈이라 생각하면 2억원도 든단다”고 농담했다. ‘부자들의 자산관리 전략’ 기사 한구석에 스친 돈이면, 고물상 할머니와 노숙자 가족에게 집을 지어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관념을 깨고 피부에 와 닿는 돈의 크기는 사람마다 달랐다.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과 사기성 채권을 판 증권사에서 사람들은 “내 돈 내놔라” 소리 질렀다. 고금리를 기대한 건 마찬가지지만 여윳돈보다 노동의 대가를 잃은 이들의 절규가 더 컸다. 셔터를 내리기 전 저축은행장이 자신의 급여부터 찾았을 때, 동양 계열사들이 그룹 법정관리 전날 주식을 내던졌을 때 기사를 썼다. 그때 국회로 불려나간 현재현 동양 회장은 내부거래를 따지자 “2만주라면 2000만원입니다. 무슨 사유가 있었겠죠”라고 답했다. 나는 돈이 커서, 그는 돈이 적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돈 만지는 천재들은 전부 여의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법조계에 와서 보니 역사와 상처도 돈으로 따져지고 있었다. 도시일용노임에 기대여명을 곱하고 호프만계수 적용…. 법원은 살인범과 과거사에 희생된 이들에게 국가가 줄 돈을 계산했다. 현금을 쌓아둔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갚을 돈도 명령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계산하고 계산이 오래 걸린 탓에, 더러는 줬다가 빼앗기도 했다. “회장님, S에서 입금했습니다.” 검찰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금전이 움직일 때 귀 기울였다.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가 기어이 재벌 총수와 대통령 사이의 뇌물로 드러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자유를 박탈할 시간도, 그 박탈을 막을 노력도 액수가 결정했다.

시장 밖에서는 법률가들의 화려한 자동차와 ‘도장 값’을 불편해했지만, 시장 안에 들어오면 그들의 근로기준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피고와 피고인을 구분 못하는 이들도 “전관을 사야 한다”고 각자 전화기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이었는데 제대로 변호를 못 받고 있다.” 국정농단의 진실이 드러날 즈음 법률가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임료를 더 써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가 돈 없이 기록을 읽지 않는 법이며, 기록 두께를 고려하면 최소 10억원이라고 진단한 사람도 있었다.

그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돈과 노동이 오갔을까.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 도중 나는 엉뚱한 데서 재판장의 말을 놓쳤다. 국정원에서 매달 300만원을 받고 ‘오늘의 유머’에 글을 올리던 민간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쓰자마자 국정원 직원들이 달려와 ‘추천’을 누른 글 중에는 ‘MB와 전태일 열사 관계, 알고 있냐?’는 것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전태일 열사의 동상을 만든 걸 아느냐는 글이었다. 그 시절 노동운동의 덕분으로 지금 편안히 돈을 벌면서, 그도 나도 얼마큼은 정의를 기린다며 뿌듯해했을 것이다. 다만 열사가 부르짖은 노동이 매문(賣文)일 리는 만무했다.

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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