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경도인지장애’에 한약·침 효과…“치매국가치료 참여” 기사의 사진
부산시한의사회 소속 한 한의사가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발 부위에 침을 놓고 있다. 한의학의 치매예방 효과가 주목 받으면서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시한의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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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가 향후 5년간 추진할 치매국가책임제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이달 중순 세계 치매의 날(21일)을 전후해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그동안 치매관리체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치과계와 한의계가 제도 참여 확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각 분야에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과계는 잇몸병, 치아상실 등과 치매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치매 관리에 구강건강 관리 및 예방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의계도 치매와 치매 전단계 질환에 한의약과 침 치료 효과가 입증된 만큼 지역 치매안심센터 등에 한방 치료 및 예방 프로그램이 강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부산에 사는 김모(78·여)씨는 평소 휴대전화와 안경을 자주 잃어버리고 숫자를 세거나 계산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였다. 지난해 2월 가족 손에 이끌려 찾은 거주지 관할 보건소에서 신경인지기능 검사를 받고 ‘예비 치매’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경도인지장애는 말 그대로 가벼운 정도로 기억을 못하는 질환이다. 정상 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에 해당된다.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1년 뒤 약 10%가 치매로 이행된다.

김씨는 보건소가 연결해 준 인근 한의원에서 4월부터 한약과 침 치료를 받았다. 경도인지장애에 효과가 입증된 당귀작약산 등 한약을 하루 2번 복용하고 침은 1주에 2회씩 맞았다. 6개월 뒤 국제 경도인지장애 판정 척도인 몬트리올인지평가(MoCA·모카) 점수를 측정했더니 치료 전 22점에서 24점으로 올랐다. 주의력 집중력 등 다양한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모카는 30점 만점이며 점수가 낮을수록 증상이 심하다. 김씨는 “치료 후 기억력이 좋아졌고 두통 불면증도 없어졌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김씨는 부산시와 부산시한의사회가 손잡고 지난해 4월 시작한 한의치매예방관리사업의 혜택을 받았다. 전국 보건소 최초로 시행된 이 사업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치매국가책임제에 한의학적 참여 모델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시한의사회는 지난달 중순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그간의 사업성과를 발표했다.

치매 전단계 뇌기능 2∼3년 젊어져

4일 부산시한의사회에 따르면 부산시 관할 군·구 보건소 16곳은 조기치매선별검사에서 경도인지장애로 판정된 60세 이상 저소득층 200명을 선정한 뒤 지정 한의원 40곳으로 보내 6개월간 치료받게 했다. 한의원들은 병증에 따라 6개 그룹으로 나눠 당귀작약산 육미지황탕 등 한약을 처방했다. 정수리와 손목 손바닥 정강이 등 혈자리에 침 치료도 병행했다.

강무헌 부산시한의사회 학술이사는 “6개월간 진행한 사업을 평가한 결과 모카 점수는 치료 전 20.37점에서 치료 후 23.26점으로, 간이정신상태검사(K-MMSE)는 24.78점에서 26.29점으로 각각 2.89점과 1.51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강 이사는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모카 점수가 매년 1점씩 떨어지는 걸 감안하면 참가자들의 인지 상태는 2.89년 전으로 회복됐음을 뜻한다. 뇌 기능이 2∼3년 젊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경도인지장애의 치매 이행률이 평균 10%인데, 이를 2%대로 떨어뜨린 셈이 된다”고 덧붙였다. 인지기능 개선을 보인 참가자는 80.5%(161명)였다. 81.9%가 치료에 만족했고 82.5%가 재참여 의사를 보였다. 부산시와 한의사회는 재참여 의사를 밝힌 이들을 포함한 200명을 추가로 선정해 지난 4월부터 2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 이사는 “치매 예방의 핵심은 치매 고위험군인 경도인지장애를 빨리 찾아내 치매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에 따라 전국에 설치될 치매안심센터에 부산의 한의치매예방관리사업 같은 프로그램이 도입·확산되고 정부 차원의 예산도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관리 체계, 한의학 참여 확대돼야

치매관리법에 따르면 한의사도 치매 환자를 진단·치료·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정부의 치매관리 체계는 서양의학 중심으로 이뤄졌고 한의학의 참여 기회는 적었다.

경희대 한방병원 조성훈 교수는 “중앙치매센터와 치매안심(지원)센터, 치매안심병원, 보건소 등 국가치매관리체계에 한의약과 한방 치료·예방 프로그램 같은 한의학 체계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현재 전국 34곳의 치매안심병원에 한의과가 설치돼 있지만 실제 한의 치매 진료가 이뤄지는 곳은 대전시립 제1노인전문병원뿐이다.

여러 연구 논문을 통해 경도인지장애나 치매에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한의약의 건강보험 적용도 제한적이다. 경도인지장애와 알츠하이머병 등에 대한 침 치료 효과는 플로스원 등 서양의학 학술지에도 여러 차례 발표됐다. 일본 신경과학회는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에 효과가 입증된 한약 ‘억간산’을 공식 치료제로 권장하고 있다. 한의학정책연구원 정창운 연구원은 “치매안심센터는 경도인지장애나 치매 환자를 발굴하면 지역사회 병·의원뿐 아니라 한방 의료기관과도 연계해 치료받을 수 있게 하고 한의학적 예방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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