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J노믹스의 나머지 반쪽 기사의 사진
소득주도 성장론은 성장론이다. 분배 개선에만 머물고 성장이 제대로 안 되면 성립되지 않는 노선이다. 그런데 새 정부 120일을 보면 분배 전략은 보이는데 성장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이 노선을 만든 이들도 한국 경제의 생태계를 알 테니 분배가 성장을 자동 보장해주리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유의 성장 전략이 없다면 이른바 J노믹스도 완성될 수 없다.

오늘의 상황에서 성장은 혁신 역량에 달려 있다. 혁신 역량은 ‘창조적 파괴’를 위해 과감히 뛰어드는 기업가 정신에 의존한다. ‘거침없는 하이킥’도 불사할 수 있는 모험심과 신명나게 하는 사기가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 ‘노’에는 선물 보따리가 풀리지만, ‘사’에는 돈은 더 내되 말 안 들으면 매 맞는다는 분위기다.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그리고 심지어 법원조차 여기에 편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업인들을 만나면 누구나 속이 답답하다고 한다.

주지하듯 대외의존도가 80% 이상인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와 맞물려 있다. 세계 경제가 잘나가면 한국 경제도 잘나가고 죽을 쑤면 같이 죽을 쑨다. 고도 성장기가 끝난 뒤 이 연동 현상은 더 심해졌다. 정권별 평균 세계경제성장률과 한국경제성장률은 노무현정부 4.8%와 4.3%, 이명박정부 2.9%와 2.9%, 박근혜정부 3.4%와 2.9%였다. 저성장 체제로 굳어진 지금 세계경제성장률을 따라잡기는 더 어려워졌다.

다행히 작년 이래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세계 경제에서도 긍정적 신호가 발신되고 있다. 대외 환경이 좋아진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는 지금 웃고 있지 않다. 실제로 8월 수출증가액 가운데 40% 정도가 반도체 수출 증가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SK, LG 등을 빼면 10대 그룹도 전체적으로 좋다고 할 수 없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494개의 2분기 영업이익은 17% 늘었지만 10대 그룹을 제외하면 오히려 24% 줄었다. 중소 상공인으로 넘어가면 죽을맛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대신 기업을 주눅들게 만드는 일은 이재용 유죄, 중국의 사드 보복, 준대기업집단 지정 등 공정거래위의 압박, 기아차 통상임금 패소 등이 이어진다. 게다가 내년 예산에서 복지예산 증가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20% 삭감된다. 체감경기와 밀접한 건설경기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공진(共進)국가’를 주창해온 필자도 복지와 삶의 질을 위한 투자를 강화하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이고, 복지 확충을 뒷받침할 경제 활력을 살릴 수 있느냐이다. 새 정부의 재정 계획은 경제가 잘나가고 세금은 잘 걷힌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원래 살림 잘하는 집안은 지출은 넘칠 것을 대비하고, 수입은 보수적으로 잡는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다. 만일 경제가 예상만큼 안 돌아가면 그 재정 계획은 휴지조각이 된다.

여당의 정기국회 10대 과제도 그렇다. 최저임금 지원, 공공부문 일자리, 공정과세, 부동산 안정, 적폐 청산 등 ‘산타클로스’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중심이고, 거기에 개혁이라는 이름의 ‘완장형 과제’들이 배치돼 있다. 이로 인해 정기국회가 정쟁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살려 경제 혁신과 도약을 이루는 학업에는 별 뜻이 없어 보인다.

한국 경제의 혁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 두 가지는 역시 규제 개혁과 노동 개혁이다. 4차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일들이 모두 규제와 깊이 관련된다. 빅데이터 구축 및 정보 이용과 연관된 규제 개혁,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위한 은산분리 규제 개혁, 일자리 창출의 보고인 서비스산업 규제 개혁 등 ‘내일이면 늦을’ 과제가 수두룩하다.

노동 개혁 안 하고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하고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가. 노동 개혁 없이 고용률 높이고 정규직 비정규직 격차를 줄인 나라를 보지 못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 2차 노동시장의 격차는 너무 크다.

전자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후자는 안정성이 부족하다. 이 어긋남을 바로잡지 않고는 ‘격차 사회’를 넘어설 수 없다. 유연성은 ‘아몰랑’하고 안정성만 추구하는 것은 반쪽 개혁일 뿐이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노동 개혁은 보수 정부가 하기 어렵다. 진보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과제다. 노조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이해를 구하고 기업의 양보를 얻어 개혁 합의를 이뤄낸다면 큰 역사적 업적이 될 것이다. 시장에 신바람을 넣으면서 복지를 확충하는 것, 이것이 서구 복지국가들이 걷는 길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J노믹스의 나머지 반쪽을 채워야 할 때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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