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페셜] ‘돈心’ 커진 정치판… 정당후원회 11년만에 부활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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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법 개정으로 11년 만에 정당후원회가 부활했다. 시민들은 정당에 1인당 연간 500만원까지 후원할 수 있다. 정당은 연간 최대 50억원까지 모금이 가능하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100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기존에는 정당이 아닌 정치인 개인만 후원회를 두고 정치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각 정당들은 정당후원회 부활을 계기로 선거에서 드러나는 '표심'을 넘어 적극적인 지지자들의 '돈심'까지 잡아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고보조금을 적게 받는 군소 정당들은 정당후원회라는 새로운 창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원내교섭단체 여부, 의석수 비율, 득표 비율 등을 기준으로 각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나눠주는데, 거대 정당이 국고보조금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소수 정당 ‘발 빠른 준비’

주요 5개 정당 가운데 가장 빠르게 대응한 곳은 바른정당이다. 바른정당은 7월 19일 중앙선관위에 중앙당 후원회를 등록했다. 정문헌 바른정당 사무총장은 5일 “중앙당 후원회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금액을 모집할 계획”이라면서 “아직 중앙당 후원회가 부활했다는 내용을 모르는 분이 많아 먼저 이 사실을 알리는 작업부터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지난달 30일 중앙선관위에 중앙당 후원회를 등록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정의당은 펀드라이징 전문가 영입도 검토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장식 정의당 사무총장은 “앞으로 개인이 아닌 정당에 대한 지지가 후원금 형태로 표출될 것”이라며 “당원이 되는 것에 부담을 갖는 분들도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정치자금을 통해 표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민의당도 등록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다. 김관영 사무총장은 “소수에게 큰 금액을 받는 것보다 1000원씩이라도 여러 국민들에게 모으는 게 더 의미가 있다”면서 “돈을 모으는 재주보다 당의 정치적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을 후원회장으로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상대적으로 더딘 움직임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고, 한국당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은 이미 지난 대선 때 ‘돈심의 위력’을 실감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기명 후원금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14억9763만원으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3억7609만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8억9013만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3억2044만원,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2억3866만원을 받았다.

특히 심 후보는 고액 후원자(연간 500만원 초과) 없이도 ‘십시일반’으로 후원금 1위를 기록했다. 출구조사 결과 득표율이 10% 미만(5.9%)으로 나와 기탁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자 4시간 동안 지지자 4000여명으로부터 2억3000만원 정도의 후원금이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표심과 돈심의 방향은 일치하지 않았다. 득표는 문 후보(1342만3800표), 홍 후보(785만2849표), 안 후보(699만8342표), 유 후보(220만8771표), 심 후보(201만7458표) 순이었다. 실제 표 차이까지 감안하면 표심과 돈심의 간극은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별로 정치자금 모금 결과에 차이를 보이면서 정당이 자생력을 갖추고 정책 대결도 적극적으로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정당 후원회 부활과 함께 거대 양당에 유리하게 설정된 정치자금법 개선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 바뀌어야

지금까지 정당들은 주로 중앙선관위가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에 기대 운영됐다. 중앙선관위가 지난해 정당에 지급한 국고보조금은 모두 827억8800만9350원이다. 분기별로 지급되는 경상보조금 413억7680만2700원, 20대 국회의원 선거보조금 399억6382만4670원 등이 포함됐다.

세부적으로는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331억1852만5470원(40%), 더불어민주당이 292억2465만3220원(35.3%)을 받았다. 이어 국민의당이 155억2614만2540원(18.8%), 정의당이 47억4137만9810원(5.7%)을 받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전체 국고보조금의 75.3%가 집중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재 정당들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받는 건 문제가 있다. 어느 누구도 이토록 많은 세금이 정당에 지급되는 것을 동의해준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보조금 배분 방식에서 벗어나 당비 모집과 매칭하는 등 국고보조금 배분의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은 거대 정당에 유리해 기존의 양당 구조를 고착화시킨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 왔다.

중앙선관위도 공청회 등을 거쳐 지난해 8월 국회에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제출했다.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지급할 때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국고보조금의 50%를 우선 지급하던 규정을 삭제하는 방안 등을 담았다. 선관위는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유리하게 배분되고 있다. 유권자의 지지 의사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국고보조금을 배분·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선관위는 대안으로 당비 납부액 및 납부 비율과 연동한 국고보조금 지급 방식을 제안했다. 정당이 지나치게 국고에 의존하는 것을 방지하고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 운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일각에서는 정당후원금과 연계하는 국고보조금 배분 방법도 거론된다. 일반인도 낼 수 있는 정당후원금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더 잘 반영할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개정 논의는 험로가 예상된다. 기득권을 쥔 두 정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항을 변경하는 데 동의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한 정당 관계자는 “양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소수 정당 사이에서도 분배 기준을 두고 당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논의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정당후원금이 몰려 정당이 건전한 정책 경쟁을 벌이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게 긍정적”이라면서도 “결국 현행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을 손대지 않고는 현재의 정당 구도를 타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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