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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기호] 학종을 구하려면

[청사초롱-이기호] 학종을 구하려면 기사의 사진
재작년부터인가 낯선 고등학생들에게서 메일을 받는 일이 부쩍 늘었다. 고등학교 독서 동아리 학생들인데 작가를 직접 만나서 작품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정중한 인터뷰 요청이었다. 처음엔 ‘아, 드디어 고등학생들마저 나의 작품 세계에 빠져버린 것인가, 이놈의 인기란’ 하는 생각에 하나하나 응했는데, 한 달에 두세 차례씩 계속 이어지다 보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원래 소설을 쓸 땐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하는 식으로 궁색한 거절 답장을 보내면 대뜸 이런 메일이 도착했다. 그럼 서면 인터뷰라도 괜찮겠느냐, 전화도 상관없다…. 후에 알게됐지만 그런 인터뷰 요청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작가에게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느 작가는 아예 자신의 SNS에 지금부터 모든 학생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다는 식의 공지를 올리기도 했다. 아울러 현직 선생님들께도 학생들에게 그런 과제를 내주지 말 것을 정중히 요청하기도 했다. 뭐야, 나만 인기 있는 게 아니었어, 뾰로통해진 마음으로 곰곰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보았는데, 도통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고등학교에 한국 문학 붐이라도 일었나? 그런데 왜 한국 작가 책은 잘 팔리지 않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작년부터 재직 중인 학교의 입학사정관 일을 병행하면서 비로소 풀리게 됐다. 아하, 이것 때문이었구나, 이것 때문이었어.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때문이었어. 말하자면 학종의 비교과 영역에, 그러니까 동아리 활동이나 진로활동 영역에 특색 있는 경험을 기재하기 위해서 작가 인터뷰를 하려고 노력했구나, 깨닫게 된 것이다. 다른 많은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살펴보니 작가뿐만 아니라 벤처기업가, 발명가,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학생들이 꽤 많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인터뷰한 내용이 기재된 학교생활기록부는 자연 한 번 더 눈이 가게 되었다.

학종을 둘러싼 논란과 비판이 거세다. 가장 대표적인 비판이 이른바 ‘금수저’ 전형이라는 것인데, 그건 아마도 비교과 영역 때문에 생긴 문제인 듯싶다. 학종 초기에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이나 소논문 작성 같은 것들이 기재되었는데, 그건 학생 혼자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있는 집 아이들만 가능한 영역이니까, 그런 프레임이 붙어버린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들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다. 교과 성적처럼 정량적인 부분은 아무 문제 없지만 동아리 활동 같은 정성적인 부분은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서활동만 놓고 보더라도 어느 학교생활기록부는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 같은 저서가 적혀 있는데, 어느 학교생활기록부는 ‘어린 왕자’나 ‘데미안’ 같은 목록만 기재되어 있다. 그러니 학생들의 특색과 자질과는 상관없이 불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종을 모두 없애고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에 대해선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지금 학종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보면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예상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입학사정관들이 중점적으로 보는 사항은 어쨌든 교과 성적이다. 전공에 부합된 성적이 어떻게 향상되었는가, 일정한 수준을 이루었는가 등에 우선순위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 뒤에 보완적 성격으로 비교과 영역을 파악한다. 그러니까 바로 거기에 학종 개선책의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생부 기재 항목을 정량화하는 것. 전공 적합도 교과 성적에 가중치를 주고, 진로활동 영역이나 자율활동 영역을 아예 없애는 것. 그런 식으로 단순화한다면 지금의 학종을 둘러싼 많은 논란과 비판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학생들이 작가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서 무언가를 묻는다는 것, 그것이 작가들에겐 다소 곤혹스러운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이 맞지 않는가. 보다 공정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서 지속시킬 가치가 있다.

이기호 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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