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삶] 흑백사진 기사의 사진
1971년 창녕
서재를 정리하다가 오래된 앨범을 발견했다. 한동안 들여다본 흑백사진에는 지난 세월의 갖가지 추억들이 담겨 있다. 열두 살 나던 해 추석날 사촌들과 함께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날의 상황을 고스란히 불러낸다. 모든 사진은 사라져간 시간을 재생한다는 측면에서 강력한 기록물이다.

내 스마트폰에는 친구나 지인들이 올리는 사진이 넘쳐나서 언제부터인가 확인하는 것조차 귀찮아지곤 한다. 전 국민이 사진가인 시대에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촬영하고 SNS에 올린다. 디지털사진은 기호이고 종이에 인화된 사진은 물질이다. 즉흥적이고 일시적인 디지털사진에 싫증을 느낀 탓에 요즘 흑백사진을 찍는 사진관이 새로 인기를 끈다. 즉석에서 촬영과 인화를 해주는 흑백사진기가 설치된 곳도 더러 있다.

친구나 연인끼리 아날로그 사진을 즐기는 이유는 희귀하고 특별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의 필름사진과 같이 24컷을 촬영하고 사흘 후에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료 필카앱도 57만명이나 이용한다고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주는 흑백사진은 느리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색깔이 사라지면 형태의 아름다움이 도드라지고 기품과 멋이 살아난다. 컬러보다 흑백사진이 감정이입 또한 강하다.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흑백사진보다 아날로그 은염 인화지 흑백사진은 실제로 톤이 풍부하다. 조작하거나 보정하지 않은 흑백사진은 시골집 사랑방의 메주 냄새처럼 고리타분하지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흑백 톤은 중립의 색이고 객관적 사실에 집중하는 색이다. 흑백사진은 재미뿐만 아니라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색이 넘쳐나는 시대에 좀 더 천천히 혹은 차분하게 흑백사진처럼 살아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기혁(경복대 교수·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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