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박재찬] 아르메니아에서 온 편지 기사의 사진
‘긴급철수 명령이 떨어져 한국으로 철수하게 됐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아르메니아 본토에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P선교사가 7일 보낸 선교 보고서 ‘아르메니아에서 온 편지’엔 안타깝게도 그의 추방 소식이 담겨 있었다. 러시아 남쪽에 있는 아르메니아에서 궁핍한 처지에 놓인 주민들을 10년 동안 묵묵히 섬기던 그였다. 어쩌다 쫓겨나게 됐을까. 러시아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 사이에 개신교 선교에 대한 제재가 부쩍 심해진 탓이 크다. 최근 몇 년 사이 종교단체 등록 요건과 절차가 여간 까다로워진 게 아니다. 이전에는 신자 200명이면 종교단체 등록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최소 1000명 이상이어야 한다. 작은 교회는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교사가 현지에서 몇몇 가정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 발각되면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벌금 규모는 자그마치 한 달 최저임금의 600배에 달한다. 아르메니아 당국은 P선교사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던 현장에 급습했다. 그의 아내를 체포해 불법 감금하는가 하면 P선교사 자택 조사까지 벌인 끝에 내쫓았다. 선교사들의 추방 조치는 비일비재하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에서도 극심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는 한국의 사드 배치 때문에 현지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다. 이 때문에 상당수 선교사들은 중국을 떠나 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선교지를 옮기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공안에 붙잡힌 A선교사. 반 년 넘도록 현지 간수소(구치소)에 갇혀 있는 것도 사드 정국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가 오르내린다. “남편은 탈북자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 사역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하는 A선교사 아내는 이런 얘기도 꺼냈다. “하나님께서 이번 일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고,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묻고 있어요.” 매일같이 아빠가 보고 싶다고 보채는 아홉 살배기 쌍둥이 남매를 끌어안고서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3년 전, 아르메니아 현지에서 P선교사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지에 있는 소수 종족 쿠르드 예디지족을 섬기는 그는 가족의 건강도, 경제적 형편도 위태로웠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론 현지인들의 배신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런 처지에서도 평온한 그의 표정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선교 현장에서 누리는 그들의 평안은 어떤 것일까.

평안(平安). 사전적으로는 ‘걱정이나 탈이 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은 근심과 걱정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라고 배운다. ‘모라비안(Moravian)’을 빼놓을 수 없다. 모라비안은 1722년 로마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독일로 이주한 보헤미아(현 체코)의 개신교 신자들이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경험한 모라비안에 대한 기억은 특별하다. 1735년 10월, 미국 조지아로 가는 배 시몬즈호에 탄 웨슬리는 배가 뒤집힐 정도로 심한 풍랑을 만났다. 거의 모든 승객들은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왔다. 모라비안 성도들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웨슬리는 ‘믿음의 충격’을 받은 동시에 ‘신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북한의 김정은에 대해 사실상 전범에 준하는 제재 카드를 꺼내고, 경북 성주엔 사드 1개 포대가 배치됐다. 북한과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불안한 뉴스가 연일 그치지 않는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선 참혹한 기억과 막연한 공포가 가슴을 짓누른다. 모라비안의 믿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싶은 요즘이다. 아르메니아에서 온 편지 속 P선교사의 마지막 인사말이 그나마 힘과 용기를 준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은 떠나고, 꿈들은 사라지고, 육신은 쇠잔해집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과 은혜만이 영원한 줄 믿습니다. 성도의 본분은 충성이기에, 주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서 선교사 본분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임지로 떠납니다.’ 그는 쫓겨난 땅 이웃 나라 조지아로 향한다.

박재찬 종교부 차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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