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나의 봉사활동 실패기 기사의 사진
나이를 먹으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싶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내놓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자책감이 들었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복음이 메아리처럼 귓전을 맴돌았다. 성취를 위해 달려온 속도에 스스로 현기증을 느끼던 참이었다. 기도 중에 다짐한 바도 있어 봉사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입양과 같은 온전한 헌신은 엄두도 못 내거니와 그저 몸이 성할 때 조금이라도 이웃과 함께 하겠다는 소박한 취지였다.

그러면서 원칙을 세웠다. 먹물의 삶을 살았으니 글을 가르치거나 지식을 전파하는 따위의 일은 피하려 했다. 봉사현장에서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경쟁력은 있겠으나 업무의 연장 아니겠나 싶었다. 그래서 별 재능도 없지만 재능기부 운운하며 머리 쓰는 일은 사양하되 몸을 움직이는 육체활동을 1순위에 놓았다. 책상머리에서 나와 태양 아래서 나를 힘차게 굴리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처음 접촉한 곳은 병원이었다. 무료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수도자들의 숭고한 정신에 감동 받아 연락을 하니 마침 목욕 봉사 자리가 있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남자들을 옮기고 씻기는 일인데,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일러주었다. 불안한 마음에 망설이다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영상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명백한 비대칭 전력이었다. 아무리 몸 쓰는 봉사를 선호한다 해도 저 분들의 몸을 돌리다 내 허리가 나갈 것 같았다.

다시 수소문하던 차에 한 복지시설에 연락이 닿았다.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하러 갔더니 상담을 맡은 사회복지사는 대뜸 중학생 가르치는 일을 권했다. 그래서 쭈뼛쭈뼛 나의 원칙을 설명하며 다른 일을 달라고 했다. 복지사가 뜸을 들이기에 청소나 환경미화 같은 일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은 자매결연을 한 기업들이 순번제로 와서 다 해준다고 했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거기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사회복지사는 난감해 하고 있는 나를 딱한 듯 쳐다보더니 제빵도우미가 필요한 곳을 소개했다. 길을 물어 찾아가니 멀리 산기슭에 부랑자 수용시설이 나타났다. 이들의 독립을 준비하기 위해 운영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제빵코스가 있었다. 일정금액의 재료비를 대고 빵을 만들 때 옆에서 거드는 일이었다.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자활을 돕는 의미에다 소요되는 시간과 체력의 범위가 내게 딱 맞다 싶었다.

그러나 그게 간단치 않았다. 설명인즉, 외부에서 제빵전문 강사를 모셔오고 제빵시설을 돌리려면 최소한 8명의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의지와 능력과 무관하게 7명의 동조자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는 일이 수월하지 않을뿐더러 조용한 봉사라는 취지와 맞지 않아 아쉬움 속에 발길을 돌렸다.

세 번 떨어지고 나니 낙담이 밀려왔다. 애초의 원칙이 잘못이었다. 분수를 알아야지 깜냥에 원칙은 무슨!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니 봉사단체의 소식지를 만드는 일이 찾아왔다. 그나마 가르치는 일이 아니니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첫날부터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하필 야간 강의가 있는 월요일 오후에 편집회의를 했다. 취재와 인터뷰 일정은 개인 스케줄과 겹치기 일쑤였다. 모임에서 나의 기여도는 바닥을 쳤고,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이 점점 희미해졌다.

아, 그제야 알았다. 봉사는 그냥 나서서 되는 것이 아님을, 조건을 달아서도 안 되는 것임을, 영성의 뒷받침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되레 방해가 됨을. 그래서 나는 전방의 전투와 후방의 군수가 함께 필요하듯 후원자로 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겠기에 지난여름부터 종교단체에 기대어 동네의 어려운 이웃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며 봉사무능력자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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