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남호철] 열린 관광지가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여행 또는 관광은 누구에게나 설렘을 안겨준다. 국내든, 해외든 일단 떠나면 낯선 곳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일상에 지칠 때 재충전을 위해 또는 내 안의 나를 만나기 위해 등 저마다 이유와 의미를 두기도 한다. 돈과 시간이 허용되면 누구든 떠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 노약자 등 이동 약자들은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유아를 둔 다둥이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 여행 취약층이다. 이들에게는 다른 조건이 더 필요하다. 이동 수단과 현지의 편의시설, 서비스, 맞춤 정보 등이 얼마나 제공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동안 관광의 산업적인 측면이 많이 강조되고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복지 관광은 약화돼 여행 취약층을 위한 관련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런 사정으로 휴가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2015년 기준 16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전국 관광지 500개 가운데 여행 취약층이 접근하기에 양호한 관광지는 1.8%(9개)에 불과했다. 반면 미흡한 수준인 관광지는 5배에 달하는 9%(45개)였다. 나머지는 ‘보통’ 수준(89.2%, 446개)으로 평가됐지만, 이 중에는 규정 규격과 다르게 설치된 시설 등이 있어 개선이 필요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관광복지 확대’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본격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다양한 계획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의 관광 향유권 확대를 위해 2015년부터 매년 6∼7곳을 무장애(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관광지로 개선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열린 관광지’란 이름도 붙였다. 공중화장실을 개선하고 경사로를 설치해 유모차·휠체어의 이동이 더 편리하도록 돕는다. 영유아 동반 가족에게 필요한 수유 시설이나 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표지판 등 필요한 시설도 설치한다. 관광 안내체계 정비, 온·오프라인 홍보 등의 지원도 한다.

2015년에 6개(순천만 자연생태공원·경주 보문단지·용인 한국민속촌·대구 근대골목·곡성 섬진강 기차마을·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 2016년에 5개(강릉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여수 오동도·고창 선운산도립공원·보령 대천해수욕장·고성 당항포)가 선정돼 운영 중이다.

나아가 문체부는 취약계층을 포함한 모든 관광객이 불편이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열린 관광지’를 대폭 확대한다. 매년 20개씩 늘려 앞으로 5년 동안 총 100개의 열린 관광지를 추가한다는 목표다.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대문구는 이미 2013년 안산에 전국 처음으로 무장애 길을 조성했다. 산의 아랫부분이 아닌 산등성이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서울시도 최근 시 인구의 약 17%에 이르는 여행 취약층을 위해 5년간 총 152억원을 투입하는 무장애 관광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다른 지자체들도 상당수 시설 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시설을 개선했다고 해서 여행 취약층의 불편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개선 작업이 이뤄지는 탓에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례로 경사로 개선 작업을 했지만 가파른 경사도 때문에 휠체어로 오르기 쉽지 않은 시설이 상당수다. 단순히 계단을 없앨 것이 아니라 경사가 높은 길과 낮은 길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관광지뿐 아니라 인근 상가와 도로 등 주변 환경까지 개선돼야 누구나 ‘접근 가능한’ 진정한 열린 관광지가 될 수 있다.

먹고살기도 힘든 데 일부 여행 취약층을 위해 예산을 들여야 하냐는 볼멘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열린 관광지는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일이다. 여행 취약층에게 편한 세상이 모두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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