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1억분의 1 확률로 다른 천재를 쫓는 천재 기사의 사진
마이자는 기이한 상상력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0대 시절 할아버지가 기독교인이고, 외할아버지는 지주여서 ‘우파 반혁명 가정’ 출신으로 분류돼 온갖 멸시에 시달려야 했다. 마이자는 이런 집안 자녀들이 상당수 그렇듯 20대 때 군인의 길을 택했고, 17년간 군대에서 복무했다. ‘암호해독자’엔 이런 삶을 살았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다. 사진작가 리샤오(Lixia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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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게 재밌어서 술술 읽힌다. 유명 중국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서사의 힘이 막강하다. 이만큼 가독성 높은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이 책이 지루하다면 당분간 소설은 읽지 마시길. 그런 독자라면 엔간한 소설은 따분하게 느껴질 테니까.

이 책은 신산한 삶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일대기다. 남자는 출생 직후 도깨비를 뜻하는 ‘사귀(死鬼)’로 불리다가 유년기엔 머리가 커서 ‘대두충(大頭蟲)’으로 통했으며 10대가 돼서야 ‘진전(金珍)’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진전은 양쯔강 남쪽 지역에서 소금상으로 유명했던 룽씨 가문에 편입되는데, 저자가 들머리에 늘어놓는 건 이 가문의 기구한 가족사다.

남미문학처럼 환상과 현실을 포개놓은 것 같은 스토리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흥미진진하면서도 기괴한 스토리다. 문학사의 거장들이 남긴 거대한 작품들이 그렇듯 이 대목을 읽고 있노라면 스토리를 좇기 위해 종이를 꺼내 룽씨 집안의 가계도(家系圖)를 그리게 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룽씨 가문의 소개가 끝나고 진전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시기는 20세기 중반. 진전은 수학에 비범한 재능을 지닌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는 대학에 진학해 ‘시스’라는 서양인 스승을 만나면서 중국 수학계를 이끌 인재로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재밌는 소설에서 주인공 운명이 얄궂을 수밖에 없는 건 불문가지. 그는 ‘701’이라는 특수기관으로 끌려가 적국의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맡는다. 암호를 해독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천재가 다른 천재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진전은 요령부득의 코드를 붙잡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것은 사생결단의 작업이었다.

“(암호해독자들이 추구하는 삶은) 마치 바다 속의 모래 한 알이 육지의 모래 한 알과 부딪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딪칠 가능성은 1억분의 1에 불과하므로 부딪치지 않는 것이 정상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 1억분의 1을, 그 말도 안 되는 비정상을 쫓고 있습니다.”

저자는 진전의 전기를 쓰려는 화자(話者)를 앞세워 3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조연들의 인터뷰나 서간문을 군데군데 끼워 넣어 흥미를 배가시키는 구성도 나쁘지 않다. 이야기는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하늘을 항해 수만 갈래 가지를 뻗듯이 그렇게 전개된다. 장황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문화대혁명의 살풍경이나 20세기 세계를 휩쓴 전쟁의 참화가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헤아린 대목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작가의 구성진 화술이다. 조선시대 문맹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전기수(傳奇?)의 솜씨가 이랬을 듯하다. 책을 읽고 나면 암호 해독은 누군가의 언어를 이해하는 작업이니 곧 작가의 삶이 저렇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일반 독자가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드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저자 마이자(麥家)는 국내엔 낯선 인물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그는 이미 스타 작가 반열에 올라 있다.

이 책만 하더라도 35개국에 출간됐고, 2014년엔 영국 펭귄클래식에 선정됐다. 펭귄클래식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고전문학 시리즈로 중국소설이 이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건 거의 반세기만이었다고 한다. ‘암호해독자’는 세계의 도서관에 가장 많이 소장된 중국소설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 책을 읽고 나면 틀림없이 마이자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질 것”이라고 평했다. 아마도 암호해독자를 마주할 국내 독자 역시 그런 기분을 느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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