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전원이 인건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같은 과 한모(56) 교수에 대해 “학문적으로 독보적인 분”이라며 법원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제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를 빼돌린 교수를 위해 학부 차원에서 탄원서를 낸 것은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학문윤리를 도외시한 부적절한 행태라는 지적이 많다.

14일 서울대에 따르면 이곳 학부 교수들은 1심 양형에 한 교수의 학문적 성과를 고려해 달라는 요지의 탄원서를 작성, 지난달 초 한 교수의 변호인에게 전달했다. 탄원서 작성과 서명은 학부 차원에서 진행돼 현직 교수 전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한 교수를 제외하고 모두 31명이다.

화학생물공학부 관계자는 “한 교수가 화학공정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최고인 분이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에 큰 도움이 됐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정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할 분”이라며 “그런 부분을 봐달라고 썼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2008년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국가 지원 연구 프로젝트 여러 개를 수주하면서 총 12억82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 6월 구속 기소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원들을 허위로 등록해 인건비를 받아내거나 제자들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일부 회수하는 등의 수법으로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매달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달 지급된 급여 중 이체해야 할 금액과 통장에 예치해야 할 금액을 정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가로챈 돈은 개인회사 자산을 늘리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 사적으로 사용했다. 현재 한 교수는 학교에서 직위해제된 상태다.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들은 탄원서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서명을 주도한 교수는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게 아니라 단지 양형에서 그런 부분들을 고려해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과의 다른 교수도 “이쪽 분야에서 워낙 뛰어난 분이라 안타까워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같은 단과대학의 다른 교수는 “그런 서명운동이 있었다는 걸 듣긴 했다”면서도 “다른 것도 아니고 제자들의 인건비를 횡령했다는데 동료 교수들이 이렇게 나서면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낯이 뜨겁다”고 말했다.

화학생물공학부 박사과정생 A씨(31)는 “그 학문적 성취라는 것조차 결국 착취에 기반을 둔 것 아닌가”라며 “우리 과지만 참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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