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톺아보기] 선교사들에게 고향의 맛을…

[교회 톺아보기] 선교사들에게 고향의 맛을… 기사의 사진
1885년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젤러 목사가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조선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선교사가 조선을 찾았다. 20∼30대의 젊은 선교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도보로 선교여행을 떠났고 조선인들을 만났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어울려 살았다. 무엇보다 서양 선교사들은 우리 음식을 잘 먹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 문화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그 나라 음식을 먹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까지 먹어가며 조선에 서둘러 적응하려다 보니 초창기 선교사 중 배앓이를 하다 요절한 사례가 유독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선교사들의 죽음은 또 다른 복음의 씨앗이 됐다. 낯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죽어간 이들의 불꽃같은 삶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서양 선교사들이 간절히 원했던 고향음식이 있었다. 바로 우유, 그것도 신선한 우유를 늘 찾았다. 삼국유사에 우유를 의미하는 락(酪)이 등장할 정도로 우유와 우리 역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서민들한테까지 보급됐던 건 아니었다. 1930년대가 돼서야 일본의 낙농기업들이 한국에서 우유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그 전까진 목장 근처가 아니면 구경도 할 수 없었단 말이다.

선교사들에게 그리 귀한 우유를 사기 위해 빠듯한 선교비를 지출하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는 본국에서 보내준 염소로 자급자족을 했다. 직접 우유를 짜서 살균해 마시고 유제품도 만들었다. 이런 전통은 이후로도 이어져 1960년대 초 존 브라운 목사가 멜버른항에서 염소를 배에 싣는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서양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은 우리나라는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 1등 국가로 우뚝 성장했다.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우리 선교사들의 사정은 어떨까. ‘현지 적응력 최고’로 평가받는 한국 선교사들도 선교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데는 어느 나라 선교사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역시 그들에게도 ‘한국의 입맛’은 남아있다. 브라질 아마존 유역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가 한 말이다. “라면이 먹고 싶어요. 아마존에선 구할 방법이 없으니까 한번 생각나면 며칠씩 라면만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게 2007년 초였다. 그해 부활절을 앞두고 그 선교사에게 라면과 쥐포, 오징어 등을 담은 ‘선물상자’를 보냈다.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선교사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완전히 구겨진 채 도착한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잘게 부스러진 라면을 끓인 뒤 숟가락으로 퍼먹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라는 사연이었다. 그토록 먹고 싶다던 고향의 음식인 라면을 먹는 그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서양 선교사들이 찾던 신선한 우유처럼 우리 선교사들에게도 그리운 고향의 음식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한 번쯤 선교사들을 위한 선물상자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선교사로 나서지 못하는 평범한 신앙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길은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100여년 전 염소도 배에 태워 공수했다는데 2017년에 라면과 쥐포, 오징어 담은 선물상자가 대수일까.

장창일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