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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누가복음 10장 29∼37절

[오늘의 설교]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기사의 사진
경제 불황으로 부에서 소외되고 불안을 겪는 사람이 늘면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내서 배척하고 증오하는 과격한 배타적 반응이 쉽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등 전 세계적으로 혐오와 배제, 차별의 공간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왁싱숍 여혐(여성혐오) 사건 등 자기보다 약한 사회적 약자층을 겨냥한 혐오와 낙인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자격을 따지면서 배제와 차별을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잘난 척하는 율법교사는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누구는 나의 이웃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경계 긋기의 폭력성을 은닉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 형성된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율법의 언약을 맺은 사람만이 사랑해야 할 나의 이웃이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불가촉천민이나 사마리아인, 세리와 창녀, 죄인들은 가까이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나의 이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되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이웃 개념은 이방인인지, 죄인인지, 인종, 종교, 출신 지역에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 곧 강도 만나 죽게 돼서 길 복판에 내버려진 그 사람의 형편에 주목합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사람이 바로 이웃입니다. 33절에서 사마리아인은 먼저 강도 만난 사람을 가서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깊은 동정심이 이웃 되어줌의 시작입니다.

34절을 보면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응급치료합니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도와야 하는 이웃의 현실을 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주변에 각양각색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사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은 한발 더 나아가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려다주고 자기 돈을 주며 더 돌봐달라고 당부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맺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정체성이 우리의 이웃됨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래서 사랑받을 만한 이웃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 신학의 책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정체성 논쟁으로 ‘이웃 되라’는 예수님의 요청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기 위해 우리의 조건과 규정을 따지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오셨습니다. 이웃의 원조이십니다. 우리는 늘 도움이 필요한 인생 가운데 살아가는 연약한 피조물이기에,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줘야 합니다. 교회는 이웃되어주기를 늘 준비하고 실행하도록 부름 받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김영식 목사(낮은예수마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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