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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발표 불안 기사의 사진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다반사. 목소리가 떨려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했다. 머릿속 말들이 수증기처럼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서 종이에 꼼꼼히 적어놓고 읽기도 했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대중 강연이 더 떨렸다. 학회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대충 알 수 있었지만, 다양한 배경의 낯선 사람들이 모인 일반 강연에서는 그들의 속마음이 짐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자의식이 불안을 키웠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해서는 잘 안 떤다.

그전에는 ‘발표하다 긴장해서 얼굴이 빨개지면 창피할 텐데’라는 생각이 치밀어 올라 불안해졌는데 ‘창피 좀 당하고 말지 뭐’라며 뻔뻔함을 키웠더니 불안이 줄었다. 실수할까 봐 떨릴 때도 ‘차라리 실수해 버리지 뭐’라고 속으로 읊조리니까 오히려 덜 긴장하게 됐다. ‘마음 좀 단단히 먹어’라며 자기를 다그치기보다 ‘불안해도 괜찮다’고 하니 편해졌다. 쉽게 불안해지고 마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불안이 확 줄어들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할 때마다 불안해진다며 찾아오는 이가 꽤 많다.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발표가 공포라고 했다. 부하직원들 모아 놓고 훈시하는 게 어렵다는 사장님도 있었다. 본인이 세운 회사의 직원들 앞에서 신년 연설하는 것이 두려워 아랫사람에게 대신 시켰다. 둘만 앉아서 대화할 때는 당당한 표정에 쩌렁쩌렁하게 말도 잘하던 사람이 낯선 사람 만나는 게 불안하다며 “긴장하지 않게 하는 약이 있으면 처방해 달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할 만한 성취를 해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구나’라는 걸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겉만 보고 부러워했던 마음이 없어지니 내 안에 남아 있던 불안도 날아가 버렸다.

발표 불안은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불안해도 되고, 남들도 나만큼 불안해 한다는 걸 깨닫게 되면 마음은 한결 편해지기 마련이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면 불안도 사라진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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