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신자의 일생

창세기 12장 1∼2절, 22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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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1∼2절은 한 사람의 신자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줍니다. 고대 근동에서 친족집단은 경제적, 물리적 안전망을 뜻했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을 둘러싼 안전망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자손 땅 복을 언제 주실지 분명히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살던 땅을 포기하고 떠나도 얻는 것이 불분명한 이런 거래에 응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 제의를 받아들여 신자의 일생을 시작합니다.

이런 긴장을 넘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과의 생생한 만남, 말씀으로 말미암은 만남이 그 원동력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부르기도 전에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겸손하게 찾아와 말씀을 거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첫 만남은 강렬했으나 아브라함의 신앙은 그리 강건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1년 후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비웃었습니다(창 17:17). 말씀에 생을 걸고 여정을 시작했던 모습은 참으로 초라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이삭, 히브리어 ‘이츠하크’(웃음)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비웃었던 그의 반응을 아들의 이름으로 지어준 것입니다.

이후 아브라함은 이삭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가 얼마나 신실하지 못했는지, 동시에 하나님은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이삭이라는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되새기면서 냉소의 시기를 벗어나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삭과 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자아를 죽이고 삼위 하나님을 높이는 ‘자기 부인’, 즉 성숙의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22장에 이르러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이릅니다. 이삭을 죽이라는 명령은 그저 이삭 하나를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의 보증이었습니다. 아직 자손들과 땅, 복이라는 약속의 성취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이삭이라는 아들을 통해 나머지 것들도 장차 주시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삭을 죽이라는 것은 약속 자체를 무효로 하자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기꺼이 순종합니다. 이 시험의 핵심은 하나님을 따르는 동기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무엇인가 필요해서 하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한 40년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필요에 기초한 만남은 필요가 다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는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한 사람의 신앙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부인하는 성숙에 이릅니다. 종국에는 필요가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면서 완성에 이릅니다. 현재 우리가 선 자리는 어디이며 과제는 무엇입니까. 신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돌아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현준 목사(남서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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