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학수] 노벨상 가슴앓이 기사의 사진
하늘엔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들녘엔 풍성한 알곡들이 가을걷이를 기다리고 있다. 노벨상은 인류 지성의 가을걷이다. 다음 달 2일 노벨 생리학상 발표부터 약 열흘 동안 노벨 문학상까지 발표가 이어질 것이다. 모처럼 맞는 긴 국민 휴일이 또다시 가슴앓이로 휩싸일 것 같다. 작년처럼 이웃나라 일본의 추수가 풍성하면 우리의 속앓이는 더욱 깊어질 게 뻔하다. 왜 우리는 그토록 노벨상, 특히 노벨 과학상 수상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가. 단순히 경제 내지 산업 발전을 넘어 과학 자체의 발전에도 우리가 뚜렷하게 기여했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근거도 없는, 단순히 허망한 기대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학계만이 아니라 한국 지성의 혁신은 어디에서 가능한가. 이런 물음들은 필연코 전면적인 성찰과 개혁을 요구한다.

경제발전 ‘속도’에 관한 한 우리가 노벨상감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 분석에 따르면 전자, 철강, 자동차, 조선 산업 모두 전적으로 선진국 추격(catch-up)을 통해 이루어졌다. 솔직히 예술, 인문사회과학까지 포함하여 한국 지성 전부가 ‘추격’을 통해 이만큼 선진국과 어깨를 겨누게 되었다. 원천 지식을 창출하는 과학자보다 따라하기 논문을 양산하는 과학자, 새로운 음률을 창작하는 희세의 작곡자보다 모차르트, 베토벤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 아직도 2000년 전의 공자와 플라톤을 읊고 있는 인문학자가 더 많은 이유를 심고(深考)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가 자랑하던 교육열 내지 교육역량에 대한 우위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다. 지구촌의 문맹률은 급격하게 줄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고등교육의 진학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네 고교졸업자가 연 50만명에 불과하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350만명 그리고 중국에서는 1000만명이 대학 수능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세계 어느 유수 대학과 기업을 가든 중국 및 인도 출신과 맞닥뜨리고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확률적으로 말해서 개인별 능력을 무엇으로 평가하든 그것에 초점을 둔 우수 인재의 절대 수에서 미국, 중국, 인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추격을 벗어나서 과학 자체의 발전에도 최선도(最先道) 국가로 나서며, 여망하는 노벨 과학상 수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응답은, 이제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전락한 과학자의 창의력 증진이다. 그러나 창의력은 개인의 타고난 역량, 예컨대 기억력과 그것에 기반을 둔 ‘따라 배우기’의 학습력과 거의 무관하다. 인간의 사고 구조를 이해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건설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력은 정말로 후천적으로 육성될 수 있는 역량이다. 무엇보다 연구자 집단의 팀워크가 개인은 물론 집단 전체의 창의력 극대화에 매우 효과적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과학한림원도 팀워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2015년 팀 사이언스(Team Science) 증진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 세계의 행동과학계는 팀워크 ‘실현 과정’에 대한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런 점을 파악하고 한국 과학기술한림원은 작년 한 해 집중연구를 통해 팀워크에 기반을 둔 창의연구 개혁안을 발표했다. 효과적으로 통합된 팀의 역량이 개개인의 역량을 합한 것보다 수십, 수백 배 더 큰 성과를 내는 모습을 잘 조직화된 스포츠팀, 벤처기업, 사회조직 등에서 가끔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 중국, 인도와 경쟁할 수 있는 과학 발전도 연구팀의 팀워크 실현을 통한 창의력 극대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를 위해 과학자 개개인 업적에 대한 양적 평가를 과감하게 지양해야 한다. 논문 수, 논문의 인용 빈도와 저널 기반 임팩트 팩터를 중시하는 한 과학자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추구하거나 담지할 수가 없다. 창의력과 효율성은 반비례 관계다. 빨리빨리 과학은 필연코 따라하기 과학만을 부채질한다. 미 스탠퍼드대학 존 로아니디스 교수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과학 논문의 데이터 및 주장 대부분이 거짓이거나 과장돼 있고, 결과적으로 연구에 투입된 자원의 85%가 낭비되고 있다.

이제 노벨상 가슴앓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명확하다. 팀워크 과학을 통해 연구팀 전체의 창의력을 끌어올리고, 그걸 위해 ‘느림’의 과학을 허용하는 일이다. 이 목표에 맞게 연구자 집단의 자율성 보장과 연구성과보다 연구과정, 즉 팀워크 실현과정에 대한 평가제 도입이 절실하다. 그런 측면에서 과학자 개인별 양적 평가에 기반을 둔 경쟁 내몰기와 각종 대학평가는 노벨상 기대에 독약이다. 새 정부에 새 정책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학수 DGIST 커뮤니케이션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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